매거진 사상학

조건과 다르게

by 법칙전달자

조건과 다르게


인간에게 있어서의 모든 것은 우선 주어져 있습니다. 주어지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죠. 모든 지적 기능도 그러합니다. 의식이라는 것도 나중에 생기는 것이죠.


모든 것은 주어진 조건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설계도라는 것이 있죠.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모순된 것은 그래서 108번뇌라는 것이, 생로병사 자체를 고통으로 인식하게 되는 상황이 생기는 원인인 그 “주어진 조건과 다르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 조건들이 어떻게 주어진 것인지 모르는 것도 그 원인이죠. 의식이 주어진 조건을 모르죠. 당연히 창조주만이 알 수 있죠.


인간은 그 조건의 모든 것을 처음부터 알 수는 없습니다. 하나하나 알아가는 것이죠.


그 시작은 창조되었다는 인식입니다. 창조되었다는 것은 인간이 만들지 않은 채 주어졌다는 것이죠.


그 기초 위에서 안정되게 그 조건에 대한 지식을 쌓아갈 수 있습니다.


창조의 비밀을 하나하나 알아가게 되어 있는 것이죠. 그것은 물론 큰 즐거움이 됩니다.


번뇌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사는 것이 고통이라는 인식을 하게 될 수도 없습니다. 방황이라는 것도 있을 수 없습니다.


알게 되는 하나하나는 영원한 것이 됩니다.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과정이 되죠.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종교마다 철학마다 다릅니다. 심지어 개인별로도 다르며 그것도 고정되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인간의식의 본질에 대해서요. 생각하는 것이 행복에 이르게 하지도 못합니다. 사실 괴상한 소리나 하면서 죽어가고 있는 것이죠. 책을 내고 추종자도 상당하다는 종교계 사상계의 유명인사들도 그러합니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죠. 기초 없이 허공에 집을 지으려고 하는 것과 같으니까요. 기형적인 역삼각형 구조인데 팽이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회전해야 버틸 수 있죠. 비틀비틀 쓰러지려고 하면 채찍으로 쳐 회전력이 약해지지 않게 해야죠. 늘 변할 수밖에 없으며 계속 새로운 주장이 나오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막바지에 이르면 결국 쓰러지죠. 지금은 심하게 휘청거리고 있는 상황이죠.


철학이나 종교 위에서 새워진 진정한 것이란 전혀 없습니다. 하나라도 분명하게 밝힌 것은 없죠. 각기 다른 주장만 있을 뿐이죠.


부정적인 감정에 빠지는 것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참선을, 명상을 오래 해도 전혀 소용이 없죠.

하도 답답하니 자기 몸을 불태우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 모두가 인간이 스스로 알아낼 수 없는, ‘주어진 조건’과 일치하지 않는 생각을 하는데서 오는 것입니다.

근래에는 인간이 과학에 의존하여 신체와 물질이 어떻게 주어졌는지 밝혀내려고 해왔죠. 세포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뇌도 들여다보아 뉴런이나 시냅스 등의 작용을 일부 알아내기도 하였죠.


그러나 영을 배제한다는 그 전제가 명백한 한계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미 과학의 종말을 선언한 학자도 있죠. 의식이 주어진 조건을 그런 방법으로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죠.


본질적인 물음에 대해서 철학적인, 종교성의 대답을 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반석과 같은 기초 위에서 지식을 쌓아 가면 오직 변영만 있게 됩니다. 행복의 질과 양도 나날이 증가되는 것이죠. 나이와 비례하여 행복도 커지는 것입니다. 20,000살인 사람은 2,000살인 사람보다 행복이 훨씬 더 크고 아름다운 것이죠. 진정한 앎이란 사람을 이렇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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