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징성에 따라
적군이나 강도가 들이닥쳐 총을 겨누며 ‘손들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듣지 않다가 총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런데 “손을 안 들었다고 사람을 죽이기까지 할 수 있어?”라고 비난하거나 항의할 수 있습니까?
“과일(선악과) 하나 먹었다고 사형이야?”라고 할 수 있나요?
군주가 그 휘하의 유능한 무사 수 십 명이 군주의 과자를 먹었다는 이유로 할복을 명하여 모두가 그렇게 하였는데 실제 할복에는 고통이 따르므로 할복하는 행동을 취하는 순간에 목을 잘라 준답니다. 그중 한 무사는 항의의 뜻으로 그 칼날을 피해 할복의 고통을 맛보며 죽었다고 합니다.
모두가 그 행동 자체의 심각성으로 인한 것은 아니죠. 그 상징성 때문입니다.
안식일에 일을 하거나 우상에 해당하는 형상을 만들거나 하는 행위도 누구에게 아무런 직접적이거나 실제적인 피해를 끼지는 것은 아니어도 사형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고대의 황제들은 신상을 만들어 놓고 신민들에게 절을 하도록 명령하였는데 이에 따르지 않으면 사형에 처했죠.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도 사형이 선고되었지만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구출되었습니다.
오히려 사람에게 해를 끼친 범죄들은 용서를 받는 경우가 많고 참작이 되어 사형까지는 이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누군가에게 실제적인 피해를 주거나 모의한 것도 아닌 행동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극형에 처해진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상징성이 매우 중요한 것이었죠.
상질물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국기를 비롯한 각종 깃발, 마크 등등 갖가지 표식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지니거나 그것에 대해 나타내는 태도나 동작으로 자신의 소속이나 충성을 나타내는 대상이나 결의를 알리는 것이죠.
성서에는 많은 상질들이 사용됩니다. 나라들은 짐승으로 상징되죠.
짐승들은 일시적으로만 존재하는데 나라들과 그에 속한 인민들도 그러합니다. 국가주의는 짐승숭배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조국, 애국하면서 신처럼 받들어 모시고 유사시에 기꺼이 생명을 바치겠다고 하는 것이죠. 그러한 짐승들이 하나가 아니라 수백이다 보니 자기가 숭배하는 짐승을 위해 상대를 죽이고 자신도 죽은 일이 늘상 발생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자신이나 타인을 해치는 행위를 하게 되는 것이죠.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우주적 쟁점들에서 어느 한쪽을 지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지 않은 행위는 창조주를 주권자로 인정한다는 것을 상징하죠. 부작위인데도 중요한 상징성이 있는 것입니다.
우상을 만들거나 안식일에 노동을 하는 것인 작위적 행위이죠. 반역을 상징합니다.
숭배의 기본원칙은 영과 진리이기 때문에 상징물이 전혀 필요 없습니다.(하느님은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을 숭배하는 사람들은 영과 진리로 숭배해야 합니다.”-요한 4:24)
십자가 같은 상징물은 이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죠. 모든 기독교인들은 이미 사법적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그들은 “나라가 있어야 종교가 있지.” 하면서 국가적 상징물에도 경배의 행동을 합니다.
인간들은 어떤 행동을 하는 것도 하지 않는 것도 생사를 영구적으로 결정하는 중요한 상징성이 있다는 것을 잘 인식하지 못합니다.
어차피 현생명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여 살 생각을 하지 않는 것도 그 이유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어 ‘사람’이라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살아야 사람이죠. 죽으면 짐승입니다. 영구적인 죽음을 스스로 택하기에 용이나 짐승을 숭배합니다. 우주적 쟁점에서 그 편을 지지하는 것이죠.
이 상징성과 관련하여 자신의 입장을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