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칙이란
인간이 임의적이고 비유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법칙은 절대적으로 지엄합니다. 관련 연구가들이 이구동성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죠. 하지만 인류의 90% 이상 아니 99% 이상이 이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일상적으로 법칙을 거스르며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는 것을 인식조차 하지 못하죠.
가장 한탄스러운 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가 이렇게 말한다. ‘내가 낮과 밤에 대해 세운 계약과 하늘과 땅의 법칙이 절대로 흔들릴 수 없는 것처럼, (예레미야 33:25)
법칙을 계약으로 표현하기도 하죠. 창조주의 계약은 법칙으로의 준엄함도 지니고 있습니다.
보통 법칙이라고 하면 물리법칙, 만유인력의 법칙, 중력이 가장 자연스럽게 연상될 것입니다.
아무튼 절대로 흔들리지 않음에는 동의할 것입니다.
하늘과 땅 모두를 철저히 지배하고 있죠.
그런데 법칙도 무수합니다. 인간은 극히 일부를 발견하였을 뿐이죠.
법칙이란 창조주가 만물, 우주를 운영하기 위하 조건, 마련이기도 하고. 의식 있는 존재의 행동의 결과를 관장하는 우주적 영적 법칙이기도 합니다. 그 창조목적인 영원한 행복을 위해서요.
인간이 행복하고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유일한 방법이 어 법칙들을 알고 그에 순응하는 것이라고도 하죠.
인간은 그렇게 하지 못하므로 아니 않으므로 불행한 노예상태에 처해 있습니다.
법칙은 절대적으로 지엄해서 인간의 개인적 상황을 조금도 참작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만든 법의 적용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공중에서 비행기가 폭발하였다면 그 탐승객 개개인이 어떤 상황이든 전원사망입니다. 자연의 법칙이 임산부나 이이를 가리지 않습니다.
방주에 타지 않은 사람이면 그가 개인적으로 어떤 사람이든 전혀 고려되지 않습니다. 익사인 것이죠.
자유의 법칙, 인과법칙, 후성유전의 법칙, 동가 상응의 법칙 ,,,,,,
자유의 법칙이란 행동의 과정은 제지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제지되면 자유가 아니죠. 그 법칙의 적용의 결과는 참작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인과법칙에 의한 것이죠.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서 다 먹을 때까지, 가인이 그 동생 아벨을 죽이는 행동을 다 끝낼 때까지 제지의 과정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 행동의 결과에 대해서만 관장하는 것이 법칙이죠.
어떤 이유에서 후성유전의 법칙을 두었는데 그래서 첫 인간 부부의 모든 후손들이 죽게 되었는데 “너희가 직접 지는 죄가 아니니 1억 원을 내면 죽음을 면해 줄게”와 같은 마련이 전혀 없이 그 모든 후손이 그 개개인이 아무리 충실하고 의로운 사람이라 해도 죽음을 면할 수는 없었습니다. 즉 타인에 의해 저질러진 행위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도 법칙입니다. 조종사의 사소한 조작상의 과실이 탐승객 전원 사망이라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죠.
과일 하나 먹은 것으로 그 수백억의 후손들의 사망이라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죠. 법칙의 적용이라는 것은 이처럼 무서울 정도로 엄격합니다. 그러므로 떨며 두려워하며 섬겨야 합니다.
두려워하며 여호와를 섬기고 떨며 기뻐하여라.(시편 2:11)
두려움과 떨림으로 여러분 자신의 구원을 계속 이루어 나가십시오.(빌립보 2:12)
법칙의 부정적인 적용들을 살펴보았으며 심은 대로 거둔다는 인과법칙인 경우도 부정적인 측면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창조주의 한 속성이 공의이죠. 그리고 그 공의는 대개 다른 피조물이 납득하는 방법으로 적용됩니다. 그래야 피조물로부터 그 공의의 적용에 대한 자연스러운 찬양과 영광을 받게 되죠.
악한 행동의 결과는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그 피해를 마냥 방치한다면 공의가 적용되는 것이 아니죠. 악이 충분히 무르익어 그 절정에 이르러 하느님은 뭐 하는 것이냐는 한탄이 터져 나올 때 시행된다면 그런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창조주의 으뜸 되는 속성은 사랑이며 이 또한 법칙입니다.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고 신장을 조사하여, 각자에게 그 길에 따라, 그 행위의 열매에 따라 갚아 준다.(예레미야 17:10)
갚아준다는 것에는 부정적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 인도되지 마십시오. 하느님은 조롱을 당하실 분이 아닙니다. 사람은 무엇을 뿌리든지 그대로 거둘 것입니다. 육체를 위해 뿌리는 사람은 육체로부터 썩어 없어질 것을 거두고, 영을 위해 뿌리는 사람은 영으로부터 영원한 생명을 거둘 것입니다. 훌륭한 일을 하다가 포기하지 맙시다. 우리가 지치지 않는다면, 때가 되어 거둘 것입니다.(갈 6:7~9)
인간의 악행도 그 성격에 따른 시간의 경과 후 반드시 그 결과가 임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훌륭한 일에 대한 것은 어떠합니까? 이미 동가상응의 법칙, 대속의 법칙이 적용되어 인간은 그 뿌린 바에 따라 영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인간의 창조된 목적인 영원한 행복이 자신에게 적용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뿌린 사람은 전혀 예외 없이 그러한 결과를 거두게 됩니다. 법칙들이 부정적인 측면으로 적용되는 것보다 긍정적인 적용이 더 강한 것이죠.
인간은 법칙에 대한 이러한 개념도 없고 알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법칙은 그러한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적용됩니다.
인간들은 법칙 거스름이 일상화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말로, 행동으로 그러하죠.
자유의 법칙에 순응한다는 것은 자신에 대한 통치권을 올바로 행사하는 것을 의합니다.
여러분은 각자 자신의 몸을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다스릴 줄 알아야 하며(데전 4:4)
이처럼 스스로를 다스리지 못하는 경우
갑작스러운 멸망이 순식간에 그들에게 닥칠 것이며, 그들은 결코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데전 5:3)
아무도 멸망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행불행뿐 아니라 생사에 대한 선택권이 있습니다.
법칙에 따라 행복과 생명을 택하면 전혀 예외 없이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나는 오늘 하늘과 땅을 여러분에게 증인으로 세우고 생명과 죽음, 축복과 저주를 여러분 앞에 둡니다. 당신과 당신의 후손이 살려면, 생명을 선택하여 당신의 하느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분의 음성을 듣고 그분에게 고착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당신의 생명이시며, (신명기 30:19,20)
법칙은 절대로 흔들리지 않습니다. 생명을 택하면 반드시 생명이 주어집니다.
멸망이 절대적으로 임하는 것보다 더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법칙이란 그렇게 인간의 생명과 행복을 위해 작용합니다. 멸망도 생명을 선택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하여 있게 됩니다.
자유의 법칙을 포함하여 모든 법칙이란 창조의 목적인 영원한 행복을 위해 그렇게 작용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