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의
사고, 감정, 의지 중에서 가장 뒤에 언급되어 있지만 의지가 의식의 중추입니다.
그것으로 사고나 감정을 통제할 수 있으며 또 그렇게 해야 하기 때문이죠.
인간의 마음(생각과 감정)은 자기 멋대로인데 그에 따라 행동하면 금방 망가지게 되죠. 그 마음의 주체가 그렇게 되고 그 주변이 그렇게 됩니다.
생각과 감정이 그대로 의지가 되어 행동으로 나타나면 큰일이 나게 됩니다. 세상이 이미 그렇게 되어있죠. 모든 인간 개개인들은 아니지만 그런 생각들에서 산출된 제도들에 대해서는 영원한 멸망의 사법적 선고가 최종적으로 내려져 있고 그 집행만 남은 상태입니다.
인간에겐 가장 큰일이 죽는 일인데 죽이는 일(전쟁)이 공식적으로 일어나는 것이죠.
인간의 생각의 일반적 특징이라는 것은 우발적, 맹목적, 비연속적이라는 것이고 무모하고 믿을 수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마음은 그 무엇보다도 더 믿을 수 없고 무모하다.(예레미야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다.)
그런 마음에서 생기는 생각이나 감정이 의지가 되게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필시 법칙을 거스르게 됩니다. 인간의 의지 즉 자신에 대한 통치권은 그렇게 사용되어서는 안 되죠.
물론 대부분의 인간의 지(知)에는 이 “자신에 대한 주권”이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사견이나 민간의 전통, 국법에 따르죠. 정(情)은 여러 사욕이나 탐심, 충동에 따릅니다.
잠의지가 없는 것이죠. 노예라고 하는 핵심적 이유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의식을 정의할 때 아예 이 의지를 빼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부분이 노예라고 하고 그게 없기 때문이죠. 오히려 그러한 생각과 감정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에 행동을 의식에 포함시킵니다. 행동을 의식에 포함시키는 것은 의아한 면이 있지만 의식을 정의하기에 따라 그럴 수 있다는 것이죠.
의지는 협의의 믿음에서 생기는 것인데 그런 믿음을 사람들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종교적 신앙이나 정치적 신념은 이에 속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사견과 사욕에 따라 행동하지 위에 언급된 의지에 따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정의에 해당하는 핵심요소가 빠져 있는 것이죠.
틀린 정보는 지식이 아니듯이 거짓되이 지식이라 하는 것이 지(知)가 아니듯이 진리만이 지식이듯이 사람들에게는 실제 의지라는 것이 없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사람이 아닌 것이죠.
사람들이 이성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지 않듯이 의지라는 것이 없습니다.
의지는 이성에서 나오는 것인데 법칙을 이해하고 그것을 적용하는 것이 이성이고 그것이 의지이기 때문입니다.
협의의 믿음이라는 것도 이 이해에서 필연적으로 생기는 것입니다.
믿음은 행동의 원천이라 그 법칙을 적용하는 행동이 없다면 그러한 믿음도 의지도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지가 없는 인간을 사람이라 할 수 없는 이유는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잡혀 죽기 위해 태어나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이성 없는 동물과 같아서.(베후 2:12)
이성 없는 동물처럼 본능으로 아는 모든 일을 행하여 스스로를 계속 부패시키고 있습니다.(유다 10)
그들은 이성에 따라, 의지에 따라, 믿음에 따라 행하지 않습니다.
행동이 짐승과 같죠. 사실 인간들 스스로가 ‘짐승보다 못한’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인간들은 개에게 더 애착을 두는 것 같습니다. 개가 인간들에게 훨씬 잘하기 때문이죠.
물론 진화론의 영향이 큽니다. 본질상 짐승과 다를 바 없다고 자처하며 그렇게 공언하고 있죠.
지정의라는 개념도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개념이 되었지만 지금의 인간들이나 미래의 박물관에도 존재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우주의 기억 속에서도 내쳐지게 될 것입니다. 그런 끔찍한 존재들은 그렇게 되는 것이 당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