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비와 딜레마
인간의 동료인간에 대한 본연의 태도는 섬김, 종입니다. 그래야 행복할 수 있죠. 자신에 대해서는 통치, 통제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런 의식을 가고 있지 않습니다. 세속적으로 출세 즉 높은 지위와 부를 얻어 섬김을 받으려 하죠. 행복은 그래야 생기는 것이라는 큰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극소수의 최상위 층에 속한 사람들도 서로 간에 알력이 있고 다툼이 있죠. 경쟁자들이 밀어내고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하려 하기 때문에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탄핵이나 단죄가 수시로 있게 됩니다. 사형이 되면 그 가족은 유배되어 관비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영의정의 부인이나 딸로 있다가 관비 즉 노예로 생활한다는 것은 이만저만한 스트레스가 아닐 것입니다.
원래 노비인 사람이 후덕한 주인 아래 있는 경우 자신의 운명이라 생각하고 만족하고 잘 적응하여 사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세상은 섬김을 받는 자 섬기는 자 모두가 정상은 아닙니다. 기꺼이 섬기고 싶은 생각이 자연스럽게 생기는 그런 적합한 인간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섬기면서 살겠다는 결심이 되어 있는 사람도요.
인간이 모두 그러하다면(섬김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면) 모두 왕이면서 동시에 종이 되는 것입니다. 양쪽의 행복 모두를 동시에 누리는 것이죠.
그런데 사람들은 신분이 낮은 사람이나 낮추어진 사람에게 어떻게 대합니까? 종에게 친절하게 대하면 주인 행세를 한다는 말이 있죠. 낙타가 장막 안으로 한 발을 들여놓는 것을 허용하면 나중에 몸 전체를 다 들여놓는다는 말이 있죠.
순수하게 그리고 영원히 섬기려는 태도와 신념이 확보되지 않고 단지 권력이 있는 타인에게 호의를 얻으려고 겉치레로 굴종적인 태도를 취하는 사람은 호의를 얻는 경우 그 본색이 쉽게 드러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주제넘은 생각을 하지 못하게 혹독하게 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예 고개를 뻣뻣하게 들지 못하게 하는 것이죠. 오래전에 군대라는 조직에서는 거의 매일 의례적인 구타나 기합이라는 것이 있었고 교도소에서도 신고식이라는 것이 있어 상당기간 가혹하게 다루었다고 합니다. 바닥을 기는 그런 태도를 유지하라는 압박이죠.
그런 처세관 때문에 노예 등에게 항상 엄한 얼굴로 거칠게 대했을 것입니다. 항상 긴장을 유지하게 했죠.
관비로 급락한 사람도 그런 식으로 대우를 받을 가능성이 많죠. 원래부터 천민신분이었다면 그나마 적응을 할 수 있겠지만 높은 신분에 있다가 그렇게 된 사람이라면 ‘대장금’이라는 드라마의 대사에 나오는 말처럼 도망가거나 죽거나 하는 것이죠.
종이 된다는 것은 인간의 본연의 신분이 되었다는 것인데 그래서 환영할 만 한데 현실은 그렇게 되기가 불가합니다.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지위나 권력과 부를 이용해 사람을 부리려는 사람은 섬기기에는 역겨운 그런 종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죠.
그런데 거의 모든 사람이 그렇게 되려고 하죠. 비록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해 포기하더라도요.
또한 그러한 사람들에게는 섬기는 자질이나 역량도 전혀 없습니다. 종도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섬김을 받기에도 섬기기에도 적합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올바른 통치를 할 자격이나 통치를 받을 자격이 없는 것이죠.
존재할 정당한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어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