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논쟁

by 법칙전달자

사랑과 논쟁


사람 사이에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사랑이라고 해야 합니다. 사랑과 그와 조화를 이루는 것, 사랑이 동기가 된 것이죠.


타인에게 그에게 불행의 원인이 될 것 같은 사상이나 태도, 습관, 성격 같은 것이 발견이 되면 시정해 주려는 시도를 하게 될 수 있죠. 그러나 진행되는 가운데 그렇게 하고자 하는 순수한 태도나 동기에서 벗어나게 될 수 있습니다.


말이 거칠어지고 심지어 논쟁적인 성격으로 번지게 될 수 있죠.


지혜로운 자가 어리석은 자와 논쟁을 벌이면 고함 소리도 있고 비웃음도 있지만 만족은 없다.(잠 29:9)


그러나 일단 위와 같은 양상이 되면 전혀 소기의 목적을 이룰 수 없습니다. 논쟁이서 이길 수 없다는 원칙도 있죠.


일단 시정해 주겠다는 태도가 주제넘을 수 있습니다. 주관적인 판단이나 평가가 기준이 된 것일 수 있죠. 그리고 접근방법이 지혜롭지 못하거나 겸손이 온전히 반영이 되지 않은 것일 수 있습니다.


성인들의 인격상의 결함, 시정점은 대부분 고침불능입니다. 이미 중독되어 있어 벗어나기 힘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동료인간에게 두드러진 결함이 발견되어 우려가 되더라도 현실적으로는 간과 즉 모르는 척하거나 사랑으로 감수해야 합니다. 그 결함에서 파생되는 역함을 부드럽게 수용해야 하는 것이죠. 인내가 요구될지 모릅니다.


그리고 이와 같지 않으면 오히려 그것이 결함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약점은 인간 개인의 노력으로 단기간에 쉽게 고쳐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시도는 대부분 실패합니다. 평화를 깨트리고 관계를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죠.


일방적으로 자신이 지혜롭고 상대가 어리석은 경우에도 그러합니다.


통찰력이 있는 사람은 화내기를 더디 하고, 잘못을 지나쳐 주는 것은 그의 아름다움이다.(잠언 19:11)


경우에 따라 그것이 자신에게 징계의 의무가 있는 자녀라도 그렇습니다.


아버지 여러분, 자녀를 화나게 하지 말고 계속 여호와의 징계와 훈계로 양육

하십시오.(에베소 6:4)


자녀라고 해서 일반적인 원칙에 벗어나 감정에 지배되어 시정하려 한다면 훈계의 효과가 없거나 약할 수 있죠.


인간은 자신이나 살피는 것이 원칙입니다.


형제 여러분, 어떤 사람이 미처 알지 못하고 걸음을 잘못 내디딜지라도, 영적 자격을 가진 여러분은 그런 사람을 온화한 영으로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도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자신을 계속 살피십시오. 서로 남의 무거운 짐을 져 주십시오. 그러면 그리스도의 법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것도 아니면서 자기가 무엇이나 되는 것처럼 생각한다면, 그는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각 사람은 자신의 행동을 살피십시오. 그러면 남과 비교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과 관련해서만 기뻐할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갈라디아 6:1~4)


그런 시도를 한다 하더라도 온화한 태도로 짐을 져준다는 생각으로 해야 합니다. 논쟁의 기운 자체가 자신이 무엇이나 되는 것처럼 잘못 생각하는 것이고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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