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에 정착하여
사람의 생긴 모습은 고정된 것입니까? 백 년도 안 되는 한평생을 사는 것이라면 어느 정도는 그럴 것입니다.
한국인 김씨로 경상도에서 태어났다면 그런 조건에는 얼마나 지배되어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유물론이나 진화론 같은 무신적 철학은 그런 식으로 주어진 조건의 노예상태로 살게 할 수 있습니다.
평생 따라가는 조건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사실 사람에게서 가장 불쌍하게 생각되는 측면입니다. 주어진 조건이라는 것이 이상적인 것이라는 것이 거의 없거든요. 아마도 정상적인 것도 별로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억지로라도 그런 조건에 자부심을 느끼려고 하기도 합니다. 더 애처롭게 느껴지는 측면이죠.
사실 누구의 아들이라든지 직장이 무엇이라든지 국적이 어디라든지 어떻게 생겼다든지 하는 조건들은 가볍게 부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재산이 얼마가 있다든지 하는 것은 더욱더 그렇습니다. 속박이고 굴레이거든요.
그런 조건들은 없다고 생각하고 살아야 하는 것이죠, 이름도 나이도 출생지도 없다고 생각하고 살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남자도 사람도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해야 할 때가 있는 것이고요. 타인을 대할 때도 천사와 같은 존재처럼 그렇게 대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죠.
자신의 조건에 집착할수록 노예화가 심화됩니다.
사실 제가 쓰는 글에서도 저의 개인적인 그런 조건들은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저는 천사처럼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죠. 로봇이라고도 할 수 있죠.
그리고 저는 제가 쓰는 글처럼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 조건들은 저에게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것을 소개할 필요도 전혀 느끼지 않죠.
또 사람을 사랑할 때도 그런 조건들은 참작할 필요가 없습니다.
인간의 자유와 행복은 수동적으로 주어진 조건들을 얼마나 무시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