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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칙전달자 Jun 30. 2022

회의론자는 숨도 쉬지 말아야 한다

회의론자는 숨도 쉬지 말아야 한다     


생각하는 것도 말하는 것도 적극작위에 해당됩니다. 그 적극작위로 “그것은 알 수 없는 것”이라는 부정적인 사상을 마치 그것이 진리인 양 적극적으로 피력하는 모순을 비꼬는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대는 불가지론이나 회의론이 지배하는 세상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자가당착을 일으킨다는 것을 인식한다 할지라도 자신도 모르는 이상한 힘에 이끌려 굴복을 하고 그러한 사상에 따라 생활을 하는 것이지요.      


유래를 살펴보면 수천 년간 종교와 철학에서 답을 추구해온 영적인 문제가 드디어는 칸트에 이르러 답을 알 수 없다고 결론 내려졌고 곧이어 그러므로 본질적인 문제는 알 수 없고 현재 살아있다는 것 즉 실존은 확실하기 때문에 본질이 무엇인지를 추구하기보다 현재의 삶 즉 실존을 의미 있게 하는 것에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는 실존주의가 대두하고 드디어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구호로 실존주의 역시 현대를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90% 이상의 절대다수가 자신도 모르게 실존주의자가 된 셈이죠. 종교적인 혹은 철학적인 쟁점은 논쟁만 불러일으킬 뿐이어서 더 이상 대화의 소재로 삼지 않는 것이 불문율처럼 되기도 했습니다.    

  

다 불가지론이 세상을 지배하는 현상입니다. 물론 그 배후에는 영적 존재가 있는데 무신적 사상의 절대적인 영향 아래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애를 써서 이를 부인하지요.      


물론 실존주의자나 불가지론자나 자유롭게 삶을 살도록 일시적으로 허용되어 있긴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진정으로 의미 있는 삶을 영위하는 것도 아니고 살 자격을 보장받은 것도 아닙니다. 그들이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2,100년에는 그들 중 아무도 존재하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 금방 지나갈 세월이지요. 생명은 신성한 것이고 존엄한 것이며 그렇다는 것은 영원성이 내포되어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사상적으로 스스로 이를 부인하는 사람은 어떻게 보면 현재의 그의 삶도 진정한 실존이라 할 수 없습니다. 자격이 없는 것이지요.      


“회의론자 숨도 쉬지 말아야 된다.” 사실 그 말은 서두에 살펴본 것 이상으로 의미심장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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