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기
죽는 세상에서 멸성의 인간이 지기(자기를 알아주는 사람)를 찾는 것이 의미가 있습니까? 브런치 같은데 글을 올리는 것도 자신의 존재감의 확인의 일환인가요? 잠깐 사는 동안 동료감이나 동지애 같은 것이 긍정적인 심리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관우와 장비는 평생의 지기인가요? 제갈량과 유비는 참으로 돈독한 지기사이인가요?
인정을 받고 호의를 얻는 근원이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이 절대적인 중요성을 띄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누구를 안다 혹은 누구와 아는 사이임을 은근히 부각하려 하는 경우가 있는데 아마도 큰 명성이 있는 대중적으로 알아주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막상 그는 “난 잘 모르는 사람인데?” 할 수 있죠. 안다는 것이 일방적인 경우도 많은 것입니다. 안다는 것도 이름을 안다거나 한번 만난 적이 있다는 정도부터 절친에 이르기까지 천자만별이죠.
그런데 대중적인 인지도가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진정으로 알만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까?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자기를 알아주기를 바란다든지 누군가가 어떤 사람인가를 진지하게 일려 한다는 것은 부질없다는 것입니다.
죽는 세상에서 멸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들은 전혀 그런 가치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멸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알아야 할 존재는 분명히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은 오직 한 분의 참하느님이신 아버지와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가는 것입니다.—요한 17:3
그런데 나는 예수를 만났다와 같이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죠. 또 기독교인들은 주님을 안다고 주장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게 주장하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 당자지인 예수는
나에게 ‘주여, 주여’ 하는 사람이 다 하늘 왕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갈 것입니다.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의 이름으로 악귀들을 쫓아내고, 주의 이름으로 기적을 많이 행하지 않았습니까?’ 하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에 나는 그들에게 분명히 말할 것입니다. ‘나는 당신들을 전혀 알지 못하오!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여, 내게서 물러가시오!’(마태 7:21~23)
모든 기독교인들이 그러하다고 단언할 수 있는 이유는 그 교리와 행위가 말씀과 너무 다르다는 데 있습니다. 그들은 삼위일체의 신을 믿는다고 하므로 창조주에 대한 기본 지시도 없는 것이죠. 교부철학이나 스콜라 철학이라고 공식화되어 있는 것처럼 그들의 교리는 철학으로 이루어져 있죠. 그리고 그들의 행위 자체가 악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지금도 교회는 사업화되어 있죠. 그들은 전형적인 자본주의자들입니다. 돈 밝히는 기복종교인들이죠.
불법을 행한다고 선언되고 있습니다. 아는 체하지 말라는 것이죠.
반면에 예수 자신이 친구나 형제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죠. 하느님도 아브라함을 벗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의 제자들도 서로 절친한 지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생명의 세계에 거하는 사람들이죠.
지기(知己)라는 것은 살 사람들 사이에나 의미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