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사에
인간사는 인간 통치자들이 전적으로 마음대로 해왔죠. 옛 소련과 중국의 통치자들이 국가적 무신론을 보급하면서 인민들이 종교의 필요를 느끼지 않는 지상낙원을 만들어 보겠다는 시도를 해왔습니다.
물론 창조주는 인간이 온갖 통치방식을 마음껏 시도해 보도록 허용했으므로 아예 자신이 존재하지 않도록 느낄 정도로 대응하므로 인간이 무신적 사상을 갖는 것도 당연합니다.
창조주뿐 아니라 마귀도 그러합니다. 인간이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갖게 하는 것이 그의 정책이기 때문에 조금도 그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것입니다.
개인 사생활에 있어서도 이런 기조는 마찬가지입니다. 신적인 존재라는 것은 없는 것이라는 확신 하에 무신적, 유물적 가치관에 따라 마음대로 살아보도록 허용되어 있는 것이죠.
기조가 그렇다 해도 개인에 대해서는 양상이 다릅니다. 그리고 국가 통치자들인 경우 회교권에서는 알라의 숭배자임을 표방하고 있죠. 실제의 통치는 무신적 기조에서 한다 하더라도요.
민주주의 진영에서는 통치자 개인별로 차이가 있지만요. 그 모두가 실제적으로는 철저히 무신적이긴 하지만요.
개인의 경우 신접한 무당들도 있는 것이죠. 신의 지시에 밀접히 따라 사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죠. 일부는 아직도 기존 제도권 종교에 적을 두고 소위 신앙생활이라는 것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저처럼 실제적으로 그러한 신비적인 체험이 전혀 없어도 말씀에 따라 창조주와 대화하는 방식으로 사는 사람들도 있고요.
신적인 존재가 전혀 없어 보이는 것은 신들의 정책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그러한 상황은 결코 무기한이 아닙니다.
그런 식으로 마음대로 통치하고 마음대로 살도록 허용된 이유가 충족되는 순간 대대적인 개입이 갑자기 있게 됩니다.
그 이유는 창조주의 통치가 불필요하고 부당하다는 도덕적인 도전에 대한 처사를 우주의 모든 피조물들이 납득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죠.
인간이 창조주의 인도 없이 스스로 통치하고 삶을 살아도 성공하고 행복할 수 있는지만 확인되면 그런 반역에 가담한 모든 자들을 제거해도 오히려 찬양을 받게 되는 것이죠.
기회도 주지 않고 도전한다고 억압을 하면 그 도전이 옳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불식되지 않을 수 있죠. 하늘에도 적어도 수억의 영적 인격체들이 있거든요.
그런데 어떻습니까? 신이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느낄 정도의 전적인 자율권을 가지고 온갖 형태의 통치방법으로 통치한 인간의 역사는 인간 사회가 낙원이 되었음을 증명하여 마귀의 그 도전이 옳은 것이 되게 하였습니까?
인간 개개인들은 모두 인격적으로 아름답고 매력 넘치는 사람이 되었습니까?
지금은 현상적으로 뿐 아니라 원리적으로도 그것이 실패이고 불가능함이 철저히 증명된 상태입니다.
이제는 오히려 왜 이 세상이 빨리 멸망이 안 되나 하고 한탄하는 정도이죠.
하느님의 한 정의에는 “전지, 전능, 영원, 무한, 최고, 절대, 유일한 존재”라고 되어 있습니다.
조만간 99% 이상의 인간들이 멸망이 집행될 때 무기력 하게 착착 죽어가면서 그런 존재가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이미 절망적인 상황에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