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이란
영적 필요를 느끼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마태 5:3ㄱ)
“나는 영이 필요해 혹은 영적인 것이 필요하다.”고 호소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물론 그렇게 표현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필요를 느끼는 사람은 있을 수 있죠.
‘영적’은 ‘종교적’과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종교나 신앙에 대한 필요를 느낀다고 해서 꼭 본연의 영적 필요를 느끼는 것과 일치한 것은 아닙니다.
예수가 위의 선언을 할 때에도 많은 종교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종교에 속해 있는 사람들은 단죄되었습니다. 그들이 순수한 영적 필요를 느끼고 그 필요를 그런 종교들에서 충족되고 있었다면 그렇게 될 리가 없죠.
오히려 영적 필요를 느끼는 사람은 그런 종교들에서 나와야 하였습니다.
종교적 필요라는 것은 거짓의 영에 의해 인위적으로 조장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종교란 사람들이 진리에 접근하는 것을 방해하기 위한 주요 수단인 것이죠. 인간들이 만들어 낸 것입니다. 배후에 귀신들의 조정을 받아서요.
당연히 종교에 속하면, 종교적 신앙이라는 것을 갖게 되면 눈이 멀게 되어 오히려 영적인 것을 보지 못하죠.
비유적으로 썩은 음식으로 배를 채우면서 필요한 것을 충족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영이라는 것은 종교적 신앙이라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영적 필요라는 것은 철학적, 사상적 필요를 의미하는 것도 아닙니다. 철학책에서 충족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어떤 것입니다. 인간이 상실하게 된 원초적인 것이죠.
영적 필요를 느끼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하늘 왕국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마태 5:3)
물론 하느님의 왕국이란 마음속에 있는 추상적인 어떤 상태가 전혀 아닙니다.
“하느님의 왕국은 여러분 가운데 있습니다.” (누가 17:21)
왕국이란 예수와 그분의 제자들로 이루어진 천적 정부이고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 청중가운데 그 구성원인 그들이 있었으므로 위와 같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음속에 있다는 의미가 전혀 아닙니다.
영적 필요를 하늘왕국과 관련시킨 것은 인간의 진정한 행복과 창조주의 통치가 밀접한 관계가 있었기 때문이죠. 성서에서 말하는 진리의 핵심 부분입니다.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창조주의 사랑, 진리 그 무엇보다도 창조주의 구체적인 돌봄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늘왕국을 통해 실현되는 것이죠.
아마도 인간이 그 집단 무의식에 의해 가장 거부하는 것도 그것이죠. 그것이 꼭 자유나 행복을 제한하는 것인 것처럼 본능적으로 여겨서 그 필요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거부하고 있는 것이죠.
그런 집단무의식형성의 원인은 뻔합니다. 창조주의 통치는 필요도 정당성도 없다고 도전한 마귀이죠.
이 글을 보시는 분들도 예외 없이 그런 집단무의식에 지배를 받고 있어 영적 필요를 느끼지 않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영이죠.(요한 4:24) 영적 필요라는 창조주의 필요, 그분의 인도의 필요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그런 필요를 느끼는 사람과 거부하는 사람의 두 부류입니다.
이글이 그런 필요를 느끼게 하는 것이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