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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가 없다

by 법칙전달자

과거가 없다


창조법칙의 절대적인 안정성으로 만물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인간이 누리는 물질문명은 이 절대성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전파를 지배하는 법칙의 안정성 때문에 전자기기가 작동되는 것이죠. 그러한 것들은 시공을 초월하여 있습니다. 그렇지만 불확정성도 절대적입니다. 그러한 성질을 바탕으로 인간의 자유가 성립하는 것이죠. 이 법칙들에 순응하느냐 거부하느냐에 따라 인간개개인의 미래의 존재여부가 결정됩니다. 지금 존재하는 80억 정도의 인간 중 천만명정도는 1,000년 후에도 존재할 것입니다.


한편 현재는 온갖 부정적인 현상들이 있으며 그것은 부조리한 것으로 느껴집니다. 그런 현상들은 무신론이나 유물론 진화론의 근거로 오용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성서에서는 그런 현상들이 창조주의 일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라고 간단히 설명합니다.


아무튼 부조리한 현상들에서 많은 사람들이 고통에 처해져 있습니다. 지금 그것을 겪고 있고 1,500년 후에도 생존힐 한 사람이 그때 낮잠을 자고 있는데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근데 그 꿈은 바로 1,500년 전에 자신이 이 부조리가 넘치는 세상에서 고통가운데 잠시 살았던 그때의 꿈이었습니다. 미래의 시점에서 보면 지금은 마치 과거의 꿈입니다.


꿈속에서는 어떤 고통도 진정한 고통은 아니죠, 죽음도 그렇습니다. 진정한 사람에게는 지금이 바로 일시적인 과거에 불과하죠.


아인슈타인의 시공식빵 비유에서도 이점을 설명해 줍니다. 창조주의 관점은 현재의 불완전한 인간이 느끼는 현재 과거 미래와 결코 같지 않습니다. 현재는 과거이지만 미래가 있는 사람에게 있어서만 그러합니다. 100년 후에도 결코 생존하지 못할 사람들에게는 현재 즉 과거도 그에게는 없는 것입니다.


현재의 생존이 너무 생생합니까? 자동차가 있고 숲이 있고 영화가 있고 커피가 있는 세계가 너무 생생합니까? 아프지 않고 삶을 즐기는 현재가 너무 생생합니까?


창조의식 없이도 진리의 지식이 없어도 평화로이 그런 삶을 누리고 있어 그런 것이 필요 없습니까?

극악무도한 인간에게도 일시적으로 그런 삶이 하용 된 다해서 그런 생각이 정당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과 진리 없이 인간은 동물적인 생존쁀이지 진정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한국어로 돤 이 글을 보고 있는 것도 금방 지나갈 과거이고 한국어도 곧 없어지겠지만 지금 이 순간의 과거가 과거로서 존재하게 되는 사람은 미래에도 존재하게 될 사람에게 일 뿐입니다.


인간은 시공을 초월한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간명한 창조법칙에 자발적으로 순응할 때 가능해집니다. 자신이 그렇게 될 인간인지는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자신이 정하면 되고 창조주의 승인을 얻음으로써 확정됩니다.


미래가 있는 사람에게만 과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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