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와 죽음
생물이나 우주에 대한 진화론에 입각한 다큐 프로의 서두에 "이 프로는 현시점의 주류 학자들의 이론에 근거한 것인데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음을 염두에 두고 시청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멘트가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생물학을 공부하다 보면 유전과 관련하여 법칙이라는 이름으로 배우게 됩니다. 유전법칙이죠. 그런데 과연 이것이 법칙이기까지 한 것인가 미심쩍은 것들도 법칙으로 되어 있는 경우들도 봅니다.
다른 영역에서 비유적으로 법칙이라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학문적으로 그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 그것은 법칙으로 확립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진화는 그것이 나온 지 200년 가까이 되어 가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진화설 혹은 진화론입니다. 관련 최고학자들에 의해 그렇게 되는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대중은 그것을 마치 기정사실인양 여기죠. 사실 최고의 학자들이 론이라고 하는데 그것을 법칙인 양 생각하거나 주장하는 것은 착각이거나 주제넘음이죠. 실제적으로는 거짓으로 확정된 것을 모르기도 하지만요.
진화론은 100% 추측으로 되어 있고 미미한 근거도 전혀 없습니다. 모든 존재와 현상들을 진화론으로 설명해야 하는데 모두가 억측이고 현상과는 너무나 다르죠.
예를 들면 인간의 언어는 돼지와 같은 꿀꿀거리는 소리에서 아기의 옹알이와 같은 상태에서 점차 발전한 것이라고 하는데 실제는 그 반대입니다. 거의 모든 언어가 고대 언어가 더 복잡하고 정교하죠. 한국어도 고어가 철자수도 많고 문법도 더 복잡합니다.
인간의 신체조건이나 수명도 고대의 인간으로 발견된 뼈들에서 현대인들보다 신체적인 조건이 더 좋았고 더 장수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나라들의 고대 기록에는 거인들이 등장하는데 발견된 많은 거인 유골들은 그 크기가 3~11m라고 합니다. 놀라울 정도로 문명화된 유적들도 많이 발굴되죠. 바다밑에서 발견되는 유적들도 많습니다. 5,000년 전에서 8,000년 전이라고도 하고 수만 년 전이라고도 하는데 연대측정법에 의한 것이죠. 지구의 나이도 매우 큰 차이로 여러 차례 번복해 온 그런 연대 측정방법이죠. 화석의 연대 측정도 그렇습니다. 주류학자들의 의견을 통일해서 발표하는 것과 매우 다른 측정결과들이 많은 것이죠.
홍수전의 인간의 수명은 유골에 대한 연대 측정에 의하면 수백 년이었다고 합니다. 과학 잡지 같은데 종종 발표되기도 하죠. 그들은 신체적인 정신적인 활력에 있어서 지금 인간들보다 상태가 훨씬 좋았습니다. 수백 년을 살면서 고도의 문명을 이룩했죠. 천사들과 인간들의 잡종인 거인들이 있었고 인간들은 그들의 통제하에 있었죠.
너무나 생생하게 보이는 것들입니다. 사람들이 수많은 근거들에 의해 명백히 볼 수 있는 이러한 사실에 대해 무지한 것은 세상의 영이 인간의 정신을 혼미케 하여 눈멀게 하였기 때문이라고 성서는 설명합니다. 진화론과 일치하지 않는 모든 현상들은 왜곡하고 은폐하죠. 그런데 너무나 많고 생생하기 때문에 감출 수 없어 누구든 관련 진실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중거들을 다각도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것이 사실일까 봐, 주류학자들에 의해 자신이 지식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틀린 것일까 봐 하는 두려움에서 고의적으로 외면하려 하는 것이죠.
두려움을 '의식을 닫게 하는 에너지'로 정의하기도 하고 그 반대인 사랑은 '의식을 열게 하는 에너지'라는 정의도 있는 것입니다. 결국 사랑 없는 사람은 무지하게 되고 고의적 무지여서 범죄적 무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심판의 주된 원인이죠.
고대의 모습이 생생히 그려지듯이 미래의 모습도 그렇게 그릴 수 있습니다. 노아의 홍수도 그 이전에는 미래였죠. 인간으로 태어났던 적이 있는 수백억의 사람들은 죽었습니다. '한오백년'이라는 노래도 있지만 홍수 이전의 많은 사람들은 900살 안팎을 산 사람들도 많이 있죠.
사람들은 성서는 과학으로, 믿음은 이성으로 대치된 시대라고 하지만 과학적이고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죽은 사람들의 개성과 기억은 저장되어 있습니다. 이를 과학적인 방식으로 설명하는 시도들도 있는데 홀로그램이론이나 아카식 레코드 등이 그 사례입니다. 죽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구에서 부활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상식적인 것입니다.
요즘은 과학만능주의자들이 많은 시대입니다. 과거에 종교의 영역에서 추구했던 일들을 과학에서 하려 하고 있죠. 부활도 그렇습니다. 과학이 발전하면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죠. 냉동인간이 있는 것입니다.
시간의 경과나 몸의 해체는 자아의 연속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어차피 몸은 끊임없이 생성소멸하는 입자로 되어 있죠. 전자가 하나 있다고 할 때 전 우주의 있는 모든 전자가 시공을 초월하여 전혀 구별이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모든 같은 종류의 양자들은 전적으로 동일하죠. 죽은 사람에 대한 저장된 정보에 해당 양자들을 배치하여 부활시키는 것은 창조주의 입장에서 조금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부활되면 그는 자다가 깬 사람처럼 자아가 연속이 되는 것입니다. 홍수이전에 죽었던 상당수의 사람들도 그렇게 부활될 텐데 그들은 잠에서 깬 것과 같이 될 것입니다. 부활은 아마겟돈 후 멸망이 정리되고 나서 나중에 죽었던 사람들 순서로 될 것입니다.
홍수이전에 죽었던 사람들은 늦게 부활되겠죠. 그 부활 시기에 기사들에는 부고가 아니라 "세종대왕"이 부활되었다와 같은 기사가 실릴 것입니다.
부활된 사람들은 교육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서에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초기에 어쩔 수 없이 순종하는 척할지 모르지만 나중에는 다시 반역할 것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이 부활에 대한 것은 멘리 피 홀과 같은 계몽적인 학자들도 과학에 근거하여 생생하게 기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생하게 보이는 미래의 진실이죠.
주류학자들이란 세상을 현재 주도하고 있는 거짓의 영의 하수인들입니다. 현재에도 그리고 현대에 일어난 공식적 살인(전쟁)과 같은 많은 죄악과 부조리에도 그것을 정당화하고 실권을 지속하는데 기여하는 이론적인 수단을 제공하는 것이죠. 창조주가 존재하지 않고 우연히 생긴 존재들이어서 강자가 임의로 자기의 권익을 위하여 실력을 행사하는 것이 당연하고 죽는 것도 그저 일상적인 현상 중에 하나로 여기게 하는 것이죠 자신의 죽음이나 타인의 죽음이나.
세상은 터무니없는 거짓과 악과 범죄와 부조리가 가득한데도 그런 현상들을 당연히 여기죠.
사람들은 그런 세상에 속하여 우위를 점하여 경우에 따라 죽는 자가 아니라 죽이는 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죠.
그런 세상에 임할 멸망에서 죽게 되는 사람들은 부활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주류라고 하는 것은 악과 거짓의 축일뿐입니다. 눈 있는 사람은 보고 귀 있는 사람은 들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