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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칙전달자 Jun 08. 2023

독자들에 대한 10년 전 예언

독자들에 대한 10년 전 예언 


"당신은 이 글을 보고 있습니다." 


정확히 맞추었나요? 우습나요? 


두 허풍쟁이가 있는데 한 사람은 나는 좀 과장해서 남산만한 찐빵을 보았는데 장정 1,000명이 한 달 만에 겨우 먹어치웠다네라고 하니 또 한 사람이 그래? 내가 본 찐빵은 열 사람이 먹었는데 얼마나 먹어 들어갔을까, 한참 먹어 들어가다 보니 그 찐빵 안에 표지판이 있는데 그 표지판에 쓰여있는 글귀는?  



" 앙꼬(팥앙금)까지 100km" 였다고 하네"


이해가 되나요? 


어떤 사람이 매우 울적하여 혼자서 한잔하러 술집에 갔습니다. 그는 술집벽에 큰 글씨로 

"지나친 음주는 



감사합니다."라고 쓰여 있는 글귀를 보았습니다. 그의 볼에는 약간의 미소가 머금어졌습니다. 도무지 옷을 기분은 아니었는데도 잠시 시름을 잊는 것 같았습니다. 


사람이 왜 웃게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의외성 때문입니다., 큰 의외성에도 잘 웃지 않는 사람도 있고 매우 잘 웃는 사람도 있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약간의 의외성이라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웃는 원인이 의외성만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런데 인간이 의외성을 접하면 왜 웃게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창조주가 그렇게 만들었다고 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여기서 "결과는 원인의 부분집합"이라는 법칙을 적용해 보면 창조주가 얼마나 유머성이 있는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동물의 세계에 그런 점들이 엿보이기도 합니다. 


이 유머성은 인간의 정신능력 중에 비중이 큰 것일 수 있습니다. 의외적인 것을 잘 상상해 내는 사람은 혼자서도 배꼽을 잡고 깔깔거리며 웃을 수 있으니까요. 


"웃을 수 있음" 이는 창조주의 사랑의 크고 구체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슬퍼할 때 일거에 그 슬픔을 되돌릴 수 있죠. 유머적 재치라는 것도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상태를 보고 한탄하는 사람은 구원의 표를 받는다고 했는데 한탄의 와중에서도 웃으며 사는 사람은, 영적인 이유에서의 웃음을 웃을 수 있는 사람은 창조주의 축복을 받고 있음의 증거입니다. 그는 슬픔에 처한 동료에게 따뜻하고 힘을 북돋워 줄 수 있는 인격적인 능력도 갖춘 것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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