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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

by 법칙전달자

모델


본이 되다, 본을 받다, 귀감이 되다, 모범이 되다. 와 같은 말들이 있죠. 성서에 본을 따르다 본을 받다. 와 같이 번역된 경우 한 번을 빼놓고는 다 pattern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추상화를 몇 개 보여주면서 추상화란 이런 것이고 이렇게 그리는 것이에요라고 할 때 그것은 결코 그대로 그리라는 의미는 아니죠. 그 그림에서 보이는 공통적인 특성이 반영되게 즉 그런 유형으로, 그리라고 요구하는 것이죠. 그러나 유일하게 예수에게 한 번 사용된 경우는 model이라는 단어입니다. 모델은 그것이 사람이건 꽃병이건 모양이나 색상 등에서 그대로 그리라는 것이죠. 사실화나 초상화를 요구하는 경우이죠. 사람이 모델인 경우 그림을 다 그릴 때까지 그대로 있어야죠.


완전한 인간인 예수만이 인간의 모델이 될 수 있죠. 예를 들어 다윗이 믿음의 본이 된다고 할 때 사실 다윗의 인생행로 전체를 보면 도저히 이건 아니다 싶을 정도로 본이 안 되는 행동들이 많았죠. 어떤 사람은 '겸손', 어떤 사람은' 인내'에서 본이 될 수 있는데 그 점에 있어서도 그 사람이 그런 특성을 보인 행동의 패턴에서 배울 점이 있다는 것일 수 있습니다. 바로, 본이 되는 그면에서도 그대로 따라 해야 하는 것은 아닐 수 있죠. 불완전한 인간이 본이 된다는 것은 대략 그런 식으로 하면 된다는 정도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는 조사하면 할수록 모든 면에서 완전한 본이 되어 그분이 하신 그대로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경우죠. 본뿐 아니라 그분은 어떤 말도 자의로 즉 사견을 말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라고 했는데 전적으로 그의 아버지이면서 하느님이신 분의 뜻과 온전히 일치한 것만 말했다고 할 수 있죠. 그 말씀 중에 하나가 자신을 부인하고 고통의 형주를 지고 계속 그분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그분의 본을 따라 그 발자취를 밀접히 따르라고 하는 것이죠.


"자신을 부인하다." 오늘날 현대인의 자기본위적인 성향과 완전히 반대인 것을 요구하는 것이죠.


인간의 모든 면 생각, 감정, 욕망, 동기, 의지, 습관, 태도, 취향, 성격 등등 인격의 모든 면에서 창조주의 표준과 조금이라도 일치하지 않는 모든 것을 자기 자신에게서 부인해야 한다는 것이죠. 자신의 영혼에서 내쫓고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데는 형주를 지는 고통이 수반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런 힘든 것을 누가 기꺼이 하려 하겠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진정한 자유, 모든 고통과 불행으로부터의 자유를 얻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죠. 뮬론 정정한 행복을 위해서도요.


오늘날은 오직 자신, 자기중심적인 가치관이 어느 때보다 강하며 세상은 결코 사랑이 넘치는 곳이 아니죠. 낯선 이웃에게 순수한 사랑을 나타내려 해도 오해받는 세상이죠. 자신이 희생적이 되고 불편하게 되는 것을 감당하기 힘들어하는 세상이죠.


사람은 원칙에 벗어나는 행동을 하기 마련이고 고난에 처하게 됩니다. 뭔가 불의에 해당되는 것에 철저하게 굴복하고 난 후 필연적으로 따르는 는 고난을 겪은 후에 더 이상 이렇게 살지 말아야지 하고 결심하게 될 수 있죠.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고도 기쁨과 영감 가운데 이를 알고 의에 고착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예수는 고난 가운데 순종을 배웠다고 합니다. 그분의 고난은 유혹에 빠지거나 죄를 지어 받는 고난이 아니죠. 의에 대한 순종 때문에 오게 된 것이죠.


인생의 목적을 영적 성장이라고 하는데 사실 영적인 것을 먼저 추구함으로써 필요한 육적인, 물질적인 것은 자동적으로 충족되어 물질적인 부와 감각적 즐거움도 더 온전해지는 것이죠. 돈이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그것을 우선적으로 추구하여 충분한 돈을 벌어 그것으로 신붓감도 구하고 돈을 뿌리며 원하는 괘락을 추구한다 해도 사실 그는 투덜거림 속에 사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존경받거나 사랑받을 만한 인성을 갖게 되거나 섬세하고 우아한 감수성을 갖게 된 것이 아니라서 실제로는 자기 자신의 어떤 면들 그리고 돈으로 취득한 어떤 것들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경우가 많은 것이죠. 돈 때문에 형식적으로 받는 호의가 인간에게 진정한 만족을 줄 수 없는 것이고. 돈 때문에 고개를 숙이는 이기적인 사람들을 대하면서 무슨 고상한 마음의 기쁨을 얻게 되겠습니까? 그리고 돈을 우선적으로 추구한 그 인성에서 그렇게 아름답고 고상한 그래서 자연스럽게 사랑과 존경이 우러나오는 그런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돈을 배경으로 의시대거나 큰소리치는 그런 인성의 소유자는 사실 늘 불안하고 불만스러운 상태에서 진정한 만족을 얻지 못한 채 삶을 낭비할 것입니다.


인간이 영적 성장을 추구하려 한다면 그런 면에서 원칙이 되는 지식뿐 아니라 본이 되는 사례를 찾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 패턴이 있어야 그렇게 하기가 쉬운 것이니까요. 더구나 모델이 있다면 정신적인 부담이 훨씬 줄어듭니다. 어떻게 인생을 그려나갈 것인가에 대한 구상을 할 필요가 없죠. 본이 패턴일 경우에는 그것을 참고 삼아 자기 주도적으로 해야겠지만 모델이 있는 경우는 그런 부담이 훨씬 줄어들죠. 그래서 모든 무거운 짐진자들아 내게로 오라고 하는 것이고 자신의 멍에는 쉽고 가볍다고 하는 것이죠.

모델이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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