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칙 원리 성질
산소 원자는 명칭에 산소라는 말이 있긴 해도 실제는 산소로서의 성질은 전혀 없죠. 질량이나 전하 등 다른 원자들과 기본적인 물리량의 수치에서만 차이가 있을 뿐이죠. 그 산소원자 둘이 공유결합을 이루면서 드디어 산소로서의 성질을 갖는 산소분자가 되고 이 분자가 성질을 지니는 최소한의 단위가 되죠. 세 개가 그렇게 결합이 되면 오존이라는 전혀 성질이 다른 물질이 되죠. 심지어 탄소는 그 결합한 방식에 따라 흑연도 되고 다이아몬드가 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이 탄소동소체는 7가지나 되다고 하죠.
윗글에서 어떤 성질을 갖는다는 표현을 썼죠. 이 '성질'이란 대표적인 범주로서 직관적으로만 파악되는 그런 개념으로 인간에 뇌에 애초에 입력된 것이라고 하죠. 이 범주들은 합하여 개념을 이루죠.
관성의 법칙이라는 표현에서 관이란 관습, 관행, 습관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항상 그러한'이라는 의미로 쓰이죠. '성'은 성질인데 관성의 법칙을 그냥 관성이라고 해도 되죠. 의미의 차이가 없이 같은 뜻을 전달할 수 있죠. 즉 성질은 법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상대성인 경우는 그것에 원리라는 표현을 덧붙이죠. 즉 어떤 성질은 원리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어떤 기준으로 그렇게 하는지는 학술용어와 관련된 전문분야에 속한 것이죠. 물이 왜 물로서의 성질을 갖고 또 오존은 왜 그런 성질을 갖는 것인지 어떤 성질은 설명이 불가하고 어떤 것은 설명이 가능할 수 있는데 그런 기준에 의한 것일 수 있습니다. 아무튼 성질이란 법칙 혹은 원리와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원리라고 할 때의 '理'는 성질의 다른 측면의 표현일 수 있습니다.
말하고자 하는 것은 중력이나 관성 자체가 어찌 보면 기적이라는 것입니다. 태양은 그렇게 멀리 있는데 어떻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지구가 같은 궤도를 돌게 하는 것입니까? 관성도 그러하죠. 같은 속도이기만 하다면 빛만큼 빠른 속도로 움직여도 힘의 더함 없이 어떻게 그렇게 계속 움직이는 것입니까?
기적이라고 생각될 수 있는 기이한 것이기에 발견도 그만큼 늦은 것이고. 그것을 발견한 사람은 위대한 통찰력을 기진 사람으로 존경받는 것이죠.
자연의 운행은 모두가 기적으로 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포가 자신을 그대로 복제하고 광합성, 성장호르몬 등의 작용으로 식물이 자라 곡식과 야채와 과일을 산출해 인간의 식품이 된다는 것, 생각하면 할수록 경이적인 것입니다.
각각의 만물 혹은 물질의, 고유의 혹은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성질 곧 원리와 법칙 등은 그 자체가 기적이며 인간은 이해하면서 경탄할 뿐이지 그러한 것을 만들어낼 수는 없습니다. 단 그런 것을 발견하는 통찰력이 있고 활용하는 추리력과 창의력이 있는데 그러한 기능은 더 큰 신성이 깃든 기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더 신기한 것은 지금 이 모든 것이 일종의 생각 즉 사상으로, 글언어로 표현되고 있고 그것은 저의 생각 언어의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저의 그러한 생각언어는 제가 듣거나 본 말언어나 글언어로 인해 형성된 것이죠. 모두 의식을 지배하는 어떤 성질 혹은 법칙에 따른 것이죠. 물리적인 법칙이나 현상들은 인간의 의식과 독립된 어떤 객관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그러한 것들은 듣거나 보는 순간에 일거에 의식화 즉 생각언어화되죠. https://brunch.co.kr/@16e7aa9606ef42a/68
위의 모든 글 그리고 그 속의 의미들, 사상들이 의식 혹은 관념의 표현일 뿐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지요. 사실과 일치한 관념인가 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저는 의식을 지배하는 법칙들을 하나하나 소개해 왔는데 그것은 의식의 특성 곧 성질이라고 해도 좋고 어떤 것은 원리라고 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이 모든 것이 부여받은 것입니다.
사유법칙의 충족이유율에 따라 어떤 목적을 지니고 그런 성질이나 원리, 법칙들이 주어진 것이죠, 인간이 이를 알고 이에 순응하여 의식을 사용할 때 칸트의 표현대로 합목적성에 해당될 수 있고 인간의 존재목적인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되는 것인데 이 또한 그 명칭의 확립여부와 상관없이 법칙인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