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는 하지만
오늘날 진정으로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 있을까요? 우선 정치인들과 재벌 즉 경제인들은 권력과 돈을 추구하는데 같은 추구를 하는 사람들은 존경할 수 있겠지만 어떤 기준에 의하면 진정으로 존경받을만하다는 면에 있어서는 결정적인 결격사항이 있는 것입니다. 물론 정통성 있고 공식적인 세속적 권위를 가지고 있다면 원칙에 근거한 존경을 나타내야 할 것입니다.
종교교직자들도 그것이 거짓 위에 서 있고 세속의 금융과 정치에 밀접히 관여되어 있어 순수하게 영적인 것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 명백하므로 존경의 대상이 아니라 할 수 있습니다. 교육계나 학계에 투신한 사람인 경우 부르주아 의식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사생활에 오점이 있는 경우 온전한 존경의 대상이 아니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도 이런 모든 면에서 결함이 없고 일찍부터 영을 중심으로 생활에 왔고 모든 면에서 본이 되는 상당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그들은 정계, 제계, 종교계, 학계, 예능계 등등으로 구성되어 있는 세속에 속해있지 않죠. 세속의 이념들에 오염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나이가 80 중반 90에 들어서면서 총기를 읽고 치매 증상이 보이거나 하다가 결국은 죽게 되죠. 몹시 안타깝고 참으로 슬픕니다. 여러 면에서의 그 강하고 생생한 훌륭한 본들을 가슴에 새기고 있었는데요.
그러나 그들의 죽음보다 아니 그 이상 확실하다고 하는 것은 그들의 부활입니다. 그들은 창조주의 밀접한 개인적 관계를 가지면서 매일 기도와 봉사중심의 그런 경건한 영적인 생활을 하였죠. 성서에 기록된 아브라함이나 모세 같은 사람도 부활이 예약되어 있죠. 생존하는 사람들은 다 볼 수 있죠.
이상 언급한 것은 그 사람이 지닌 가치에 따른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사람을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하에 있습니다. 그리고 서로 존중하고 존경하라는 원칙이 있죠.
특별한 경우 아니면 그가 어떤 사람인가 하는 의식 없이 사람에 대한 존중심을 나타내야 하고 또한 그의 장점만을 주목해서 본디면 존경심이 자연스럽게 생길 수 있습니다. 장점이 전혀 없는 사람도 찾기 힘드니까요. 그렇게 해서 그에게 이를 표현하는 태도를 보이고 말들을 한다면 이는 그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나 같은 사람에게 이처럼 존중해 주는 방식으로 대해주는 사람이 있다니 실제 그렇게 존경받는 사람이 되게 노력해 보아야겠군 하는 결심이 생기게 할 수도 있는 것이죠. 그의 자중심을 살아나게 해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 그를 존중 정도가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외면하고 냉정하게 대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경우에도 멸시의 감정이 조금도 깃든 것은 아닙니다. 그에게 잘못을 느끼고 회개하고 더 이상 같은 죄를 짓지 않겠다고 하는 결심을 갖게 하기 위한 것이죠. 잘못애 대해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여 혼란을 갖게 할 수 있는 그런 친절한 태도로 대하는 것은 그에게 오히려 해가 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원칙에 정해진 경우를 빼놓고 존중심이나 존경심은 그 자체가 행복입니다. 사람은 이러한 존중과 존경을 일상적으로 나타내는 그런 인격을 기본적으로 지녀야 하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