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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칙전달자 May 17. 2021

거대한 간격

거대한 간격


깊은 수렁 같은 것이 사이에 있어 연결이 불가능한 간격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파충류와 조류의 간격이 그 하나입니다. 파충류가 조류가 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죠. 시간이 영원히 지나도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진화론의 두 무기는 우연과 긴 시간인데 둘 다 그런 식의 변화의 근거가 되기에는 너무 터무니없는 것이죠. 


유인원과 인간 사이의 간격도 그러합니다. 연결 불가의 간격이 있는 것이죠. 저는 대학에서 들은 인상적인 말 몇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교육사회학시간에서 듣게 된 말입니다. 인간은 생물학적으로도 동물과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점을요. 생물학적으로도 유안원에서 인간으로 진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죠. 


이번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들 사이의 그러한 간격에 대한 것입니다. 논리학 개론시간에 들은 말입니다. 인간이 죽는다는 것은 논리적으로는 거짓이라는 점을요. 


그러나 진화론을 비롯하여 인간이 죽는 것을 기정사실로 마치 자연의 섭리처럼 여기는 철학들이 있죠. 그래서 그러한 철학에 따른 신념을 갖고 사는 죽을 운명의 인간들이 있는 것이죠. 영적인 삶이 무엇인지 모르는 부류의 사람들이죠. 베드로는 그들은 죽기 위해서 태어난 이성 없는 동물들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스스로도 동물들과 같은 계열에 속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죠. 


그리고 진짜 사람들이 있습니다. 현재는 물리적으로 전자의 인간들과 일시적으로 같은 세계에 처해 있긴 하지만요. 


동물들에게는 인간이 될 수 있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인간이 될 수 있는 선택의 여지가 있습니다. 영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죠. 


영적이란 이성적 혹은 추상적 이라는 말과 본질상 비슷한 것으로서 인간에게 본시 잠재적으로 부여된 것입니다. 지적 정서적 기능이 잠재적으로 부여되어 있고 교육을 통해 수학이나 음악을 할 수 있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죠. 그러나 ‘영학’이나 ‘영문화’라는 말 자체가 없는 것처럼 절대다수의 인간은 영적인 면에 대한 개발 교육을 받지 않아 그것이 뭔지 모르게 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극소수의 사람들만 영적 교육을 받고 영적으로 살고 있죠. 그리하여 서로 연결되는 것이 불가능한 큰 간격에 의해 인간이 두 부류로 나뉘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쪽에 속하기를 원합니까? 아직 선택의 여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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