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악스러운
세계 도처에서 경악스러운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전 우주 가운데 한 건도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것이죠. 그 경악스러운 사건들의 원인은 경악스러운 무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무지 가운데 하나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와 같은 문제"라는 말에서 드러납니다. 그것은 고려의 여지가 없이 자명하게 닭이 먼저입니다. 인류가 전체적으로 불가지론이라는 어두움에 처해 어처구니없는 무지함 가운데 절망적이라고 생각되는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이런 문제에 대한 답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종교는 거짓(그 교리나 행위 면에 있어서)이라고 공언하는 사람이라 결코 기독교적 창조론의 입장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과학적 지식에 대해서는 우리의 경험이나 직관, 상식과 일치하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그것에 대한 거의 절대적인 신뢰를 합니다.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가 얼마이고 빛의 속도가 얼마라고 하면 우리는 그것을 직접 확인하지 않고 신앙심 깊은 신도가 교직자의 설교에 대한 믿음을 갖듯이 믿음을 갖습니다. 빛에 대해서 그 방향이나 그 반대방향으로 아무리 빨리 가도 빛의 속도는 변하지 않는다는 황당하게 느껴지는 성질에 대해서도 그러하며 양자세계에서는 사람이 마치 아무 문제 없이 벽을 통과하는 것과 같은 일이 예사롭게 생긴다는 공상적인 주장에 대해서도 요즘은 그렇게 될 수 있는 확률이 수학 공식으로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리고 있으므로 우리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저는 그러한 태도가 문제 있음을 지적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강하게 지적하려고 하는 것은 왜 과학 영역에서 밝힌 법칙이나 원리에 대해서는 확신을 가지고 삶에 적용하기도 하면서 왜 사상학 영역에서 밝힌 법칙들에 대해서는 전혀 그런 모습을 보이지 못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상대성원리나 양자역학을 이해하지는 못할지라도 받아들이고 적용하여 삶의 편의를 얻듯이 사상계에서 밝혀진 진리도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지적으로 훨씬 자유롭고 풍요롭고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모든 현상들에는 원인이 있습니다. 카메라가 있다고 하지요. 그런데 우리는 틀림없이 그 카메라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 카메라에 대한 설계가 인간의 정신에 먼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모든 물질적 존재나 감각되는 현상에 대해 감각되지 않는 영적인 것이 먼저이며 근원입니다. 그것이 우연이라 할지라도 우연 자체는 감각되는 것도 물질인 것도 아닙니다. 우연에 의해 만들어졌다면 우연이 먼저인 것이죠.
비약하여 절대적으로 닭이 먼저입니다. 그것이 우연이든 신이든 성체인 혹은 완성된 것이 먼저이며 근원입니다. 불완전, 미성숙, 과정적인 것, 단편적이거나 일시적인 것은 결코 온전하거나 근원적인 것에 대해 먼저일 수 없습니다. 원인이 결과를 포함하며 먼저라는 것은 철칙입니다. 삼라만상의 영원 전부터의 제일원인은 당연히 존재하며 그 제일원인에서 온전한 것(닭)이 먼저 나왔으며 알은 나중입니다.
그 과정을 보지 못했다거나 그 원리를 알지 못한다고 해서 부정적인 판단을 한다면 중력이나 빛, 상대성원리 같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이 그 원인을 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하지만 절대적인 확신을 가지고 있듯이 그 이상 확신을 가져야 하는 논리성과 직관성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세상의 지배자는 이러한 자명한 진리를 알지 못하게 차단해 왔는데 인류를 어두움 가운데 있게 해야 자신이 원하는 대로 조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암흑가운에서 그 세상이 멸망될 때까지는 무지에 기인한 사건 사고들이 계속 일어날 것입니다. 우주의 창조주는 당연히 우주 가운데서 그러한 악을 말소할 것입니다. 악으로 더럽혀진 지구는 조만간 깨끗하게 청소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