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상학

이해하면 당연하다

by 법칙전달자

이해하면 당연하다


성서의 영적 이해력이라는 표현은 정확한 지식의 중가와 관련하여 사용되죠.


처음에는 놀라움을 주었던 지식도 이해하고 익숙해지면 당연하고 상식적이 됩니다.


아인슈타인이나 칸트 그리고 양자역학 학자들이 발견한 지식들은 처음에는 놀라운 것이었지만 그것들을 실제로 이해한 사람들에게는 나중에 알고 보면 당연한 것으로 느껴지는데 이는 발전이라고 할 수 있으며 사람들은 이러한 발전을 이루어 나가야죠.


실제로는 그것을 본질적으로 확연하게 이해하는 사람은 극소수라고 하지만 그들에게는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지적 이해 혹은 학자적 이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영적 이해에는 그러한 것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더 근원적인 이해까지 담겨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리학 쪽으로는 사람들이 그걸 이해를 못 해도 그 점에 대한 피상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 그 반대되는 주장을 하지는 않습니다. 일상에서도 그 지식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죠. 그런 경우는 거의 생기지도 않지만요. 즉 상대성원리나 불확정성원리를 거스르는 그런 행동을 하게 되는 경우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런데 사상학쪽으로는 전혀 양상이 다릅니다. 생각이라는 것은 늘 하는 것이고 종종 철학적 성격의 생각을 하기 때문이죠,


칸트가 사상학쪽으로 발견한 진리는 많습니다. 뉴턴이 물리학에 있어서 여러 법칙을 발견했듯이죠. 법칙이라는 이름을 붙여 표현하면 불가지법칙, 관념법칙, 도덕법칙, 그 밖에도 여러 법칙성 지식들이 있죠.


칸트는 영적 진리 즉 이성적 진리는 인간이 알 수 없다는 것을 법칙으로 발견하였죠. 하이젠베르크가 발견한 불확정성 원리와 비슷한 성질이 있는 것이죠. 인간이 알 수 없다는 면에서요.


칸트는 우주가 유한한 지 무한한지도 알 수 없다고 했는데 이는 과학자들도 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이죠. 성서에도 인간이 알 수 있는 것과 알 수 없는 것을 구별하고 있고 애초에 인간이 알 수 있는 영역과 그렇지 않은 영역을 칸트가 뚜렷이 구별한 것과 유사성이 있습니다.


물리적인 면에서도 인간이 알 수 없게 한 것이라는 언명이 있죠. 그러나 인간이 알아내도록 한 영역에 대해서는 창조주가 그것을 알려 준다는 것은 모순이죠. 지성 혹은 칸트가 오성이라 한 것을 사용하여 알아내는 것이 인간의 삶의 보람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근래에 양자역학에서 밝혀 낸 것은 음미하면 음미할수록 당연한 것으로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전에 고전적으로 생각했던 그런 단순한 구조의 물질로는 생명이나 의식 같은 것이 산출되는 것이 불가능하니까요. 분자가 형성되는 것도, 전류가 흐르는 것도 불가능하죠. 물 같은 것도 생길 수 없는 데 물분자는 공유 결합인데 이는 전자가 중첩상태라야만 가능하다는 것이죠. 처음에는 아무리 해괴망측해 보여도 이해하고 익숙해지면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하지 못한 것에 대해 비평적이 되면서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죠.


말하고자 하는 결론은 인간이 알 수 없도록 되어 있는 것은 창조주의 선언에 의해서만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걸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인간은 영원한 영적 무지의 상태에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죠. 알 수 없다는 것은 이성의 한계이며 말씀을 이해하고 적용하는 것이 이성의 용도입니다. 이렇다는 이해 자체가 영적 이해력을 가져야 알 수 있는 것이죠. 생각하면 할수록 당연한 것입니다. 학자들이 밝혀낸 법칙들을 제대로 이해해도 마찬가지 결론이고요.


성서의 진실성은 매우 여러 면으로 입증이 되는데 오늘 언급한 이와 같은 면으로도 입증이 되어 사람들이 그것을 거부하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인생의 목적은 영적 성장이라고 합니다. 그중의 한 면이 지식에 익숙해지고 더 고등한 지식을 섭취하고 이해하여 익숙해져 상식적인 것이 되게 하고 이러한 과정의 연속이 되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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