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법칙전달자 Oct 08. 2023

그립다 생각나면

그립다 생각나면 


실제로 자연스럽고 강한 그리움이 생길만한 사람은 순수하고 깊으며 또한 매우 강한 독창미를 띄고 있는 경우이죠. 실제 그런 사람은 여러모로 이 험한 세상에 대한 적응력이 없이 자살 및 질병 등으로 20대, 30대, 40대에 일찍 삶을 마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지인들과 비추어보면 가끔 이 천박한 목숨을 왜 이렇게 끈질기게 유지하고 있는가 하여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대의 시를 선물로 받고 싶다거나 노래를 듣고 싶다고 하면 가꺼이 그렇게 해 주었던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젊은 시절의 친구들이었는데요. 요절한 것이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죠. 어떻게 보면 영적 안전지대에 있는 것이죠. 


홍수전 시절에 에녹이라는 예언자가 있었는데 악한 현실에서의 그의 삶이 너무 고통스러운 것이었기에 창조주는 그 당시 사람들이 900살 이상 살 때 365세 때 그의 삶을 중단시켰죠. 그렇게 하는 것이 에녹을 위해 더 낫다고 생각하여 인위적으로 그렇게 한 것이죠. 


포탄이나 총에 맞아 죽거나 자연재해나 코로나 등으로 다수의 사람들이 때 이르게 죽어나간다는 소식은 연일 들려오죠. 차라리 그렇게 죽는 사람들은 더 희망이 있습니다. 지금은 사람들이 죽는 것이 당연히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부고장을 점점 더 많이 받게 되고 곧 자기 차례가 되죠. 그러나 지금 살아서 아마겟돈을 맞이하여 죽는 사람들은 희망 없이 소멸이 되죠. 


그 뒤로 세상이 정리되면 부고는 더 이상 없어지고 누가 누가 부활되었다는 소식이 그것을 대신하게 되죠. 이 말세를 죽지 않고 통과한 사람들은 사별한 그리운 사람들을 만나게 되죠. 


부활된 사람은 시간의 경과를 의식하지 못하고 자다가 일어난 사람처럼 되죠. 얼마간의 적응기를 지나면 이전보다 훨씬 더 감미로운 교제를 하게 되죠. 이전에 죽었던 모든 사람들이 자동적으로 다 부활되는 것은 아닙니다. 누가 부활 것인가 하는 기준은 인간이 정확히 알 수는 없죠. 


에녹의 부활은 100%이죠. 그를 그리워한 친구가 혹 있었을까요? 아마 그랬다면 중간에 삶을 창조주가 중단시켰을 정도로 그렇게 고달프지는 않았을지 모르기 때문에 없었을 수도 있죠. 부활되면 갑자기 많이 생기겠죠. 


전혀 이기적이고 물질적으로 틀 잡히지 않은 그러한 순수하고 아름다운 인성을 지닌 사람들과의 잠시의 교제는 욥의 다음과 같은 말이 생각나게 합니다. 


그는 큰 고통 가운데 하느님께 죽여달라고 다음과 같이 간청했죠. 

"오, 당신이 저를 무덤에 감추신다면, 당신의 분노가 지나갈 때까지 저를 숨겨 두신다면,

저를 위해 기한을 정하시고 저를 기억해 주신다면! 사람이 죽으면 다시 살 수 있겠습니까?

제 강제 노역의 모든 날 동안 저는 기다리겠습니다, 제 구제가 이르기까지. 당신은 부르시겠고 저는 대답할 것이며, 당신은 손수 지으신 것을 그리워하실 것입니다."(욥 14:13~15)


아마 욥은 하느님과 친밀하게 교제하였을 것이므로 그분이 자신을 그리워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나 봅니다, 무덤에 있는 욥에게 이제 일어나라고 부른다면 바로 응하겠다고 한 것이죠. 


성서의 예언대로 세상은 이전에 없었던 큰 환난에 돌입할 것입니다. 그것을 보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부러운 것이죠. 

 https://www.youtube.com/watch?v=uur13O8kOKM

작가의 이전글 반대되는 것은 모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