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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칙전달자 Jul 31. 2021

사랑3

사랑형이상학

사랑3 

    

사랑형이상학    

  

보통 사랑은 선행이라는 형태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런데 그 경우 인간 본연의 힘이라고도 할 수 있는 참사랑이 구현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누군가에게 뭔가를 베풀 때 경우에 따라 희생적으로 그렇게 하는 경우에도 그것이 자신이 기분 좋게 하기 위해서,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혹은 자신이 안심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칭찬이나 감사 혹은 대가가 돌아오지 않으면 서운함을 느끼거나 실망의 여지가 있게 하는 선행은 그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 누구 누구에게 그렇게 잘 해주었는데 내가 이렇게 곤경에 처했는데 내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왜 하나도 없는건데 하는 식의 원망이 생길 여지가 있는 경우도 그렇습니다.   

   

그것은 참사랑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순수하게 그 행위를 하는 것 자체에만 전적인 의미를 두는 것입니다. 결과에 대해서는 조금도 연연하거나 집착하지 않는 거죠. 단지 감사하는 마음으로 선행을 하는 것이죠.      

사랑은 ‘의식을 열게 하는 에너지’로 정의되기도 하는데 그래야 원칙에 근거한 사랑을 할 수 있기 때문이죠. 원칙을 알려면 의식이 열려져 있어야 하기 때문이죠. 이런 의미의 사랑의 반대는 두려움입니다. 그것은 의식을 닫게 하는 힘이죠. 자신이 알고 있는 사상 이미 익숙해지고 중독된 사상 혹시 그것이 거짓으로 드러나고 자신을 변화시켜야 하는 압력을 받을까 하는 무의식적인 두려움으로 의식을 닫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사랑이 있다면 의식을 열어 관련 진실을 접하고 수용하여 결국은 창조의식을 갖게 됩니다. 창조법칙 혹은 자연법칙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갖게 되죠. 그것은 인간의식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라 할 수 있는데 그것으로 참사랑을 일상적으로 구현하게 되는 것이죠. 즉 창조의식 없이는 참사랑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만물조성의 으뜸원리라 해도 그것은 자유법칙 즉 자유의지의 철칙의 적용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무엇보다도 의식을 가진 존재의 자유의지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즉 사랑을 거절하는데도 불구하고 억지로나 강제로 사랑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상대가 신념에 의해 확고하게 거절하는데 사랑을 베풀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돼지에게 진주를 던지지 말라는 말이 있는 이유입니다.    

  

사랑교육의 부재로 세상은 사랑을 알지 못하며 당연히 사랑은 행해지지 않습니다. 어떤 면에서 사람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살아야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진화론이나 유물론  같은 거짓 철학의 영향으로 죽는 것을 기정사실 마치 자연법칙으로 여기고 살아 있을 때 많은 부와 쾌락, 권력을 누리는 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서로 분열되고 대립하여 으르렁거리는 세상, 대표적으로 정치판에서 오가는 언행을 보면 알 수 있지요. 사랑과는 너무나 너무나 거리가 먼 세상이 되었습니다. 약육강식이 지배되는 짐승들의 세상과 같아서 멸망이 지극히 당연합니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사랑을 선택할 수 있으며 그 필연적인 귀결은 영원한 행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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