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에 유리
어떤 사태가 생기면 그로부터 생기는 불똥의 악영향을 최소화하려 여러 계산을 하는 그런 사고를 당국자들이 하는 것을 볼 수 있죠. 정치적 셈법이라고도 합니다. 자국의 영향력을 강화하고 상황을 자국에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적절하면서 기민한 대처를 하려고 합니다.
어떤 사태에 개인들도 그것이 출세할 기회가 되게 대응방법을 엿보기도 하죠. 삼국지의 조조는 그런 대응을 잘하여 일거에 권력을 거머쥐었다고도 하죠.
'자국 혹은 자당에 유리'라는 개념 자체가 당연한 것이 아니라 불법한 것임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세상적 즉 마귀적 사고방식이기 때문이죠. 사탄교의 핵심 강력이기도 합니다. 자기 제일주의이죠.
남은 무관심의 대상 더 나아가 적의의 대상이 되는 것이죠. 어떤 사태가 생겼을 때 자국민은 안전한가 그것이 확인되면 다행인 것이죠. 배타적인 우리 혹은 남 의식의 발로이죠. 남이라고 의식하는 존재가 자기 혹은 우리의 이권을 위협하거나 침해하면 적 즉 원수가 되는 것이죠. 마사일을 퍼부어서라도 제거해야죠.
'자신이 대접받기를 원하는 대로 대접하라' '원수를 사랑하라'는 원칙들은 딴 세계의 공염불 같은 것이죠. 현실에서는 적용불가능하죠. 그 반대되는 것을 강력하게 시행하는 것이 능력 있는 것으로 간주되죠. 더 이상 소위 자신의 영역에 대한 침입을 하지 못하게 상대를 불능으로 만드는 것이 잘하는 것이죠.
예수나 그의 제자들은 무력적으로는 철저히 무능했죠. 당국자들은 원하는 대로 그들을 처벌할 수 있었죠. 그들은 무력적으로 전혀 대항하지도 않았습니다. 죽이면 죽었죠.
종교는 성서에 음녀로 묘사되어 있죠. 짐승 즉 정치세력에 올라타 세속적인 기득권을 유지하려 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죠. 가톨릭의 수장인 교황은 한 동안 황제보다 실제적인 권한이 더 강했다고 하죠. 전쟁을 주도해서 일으키기도 하고요. 러시아 정교회의 수장도 푸틴에게 아참의 말을 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죠. 1,2차 대전에서는 각 나라의 주교나 군목들이 그 나라의 군대를 신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신도들에게 총대를 잡도록 부추겼죠. 한국에도 산앙의 전력화라는 개념이 있는데 이는 종교를 전력을 강화하는데 이용한다는 의미죠. 목사나 신부 같은 교작자들이 개인으로 혹은 집단으로 특정 정파에 우호적이거나 반대하는 그런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을 수시로 볼 수 있죠. 또 실제로도 기독교 민병대, 회교 민병대 같은 조직이 있다고도 합니다.
거리에서나 버스나 전철 안에서 일상적으로 만나게 되는 낯선 사람들은 다 남이죠. 한국인인 경우 세계인구의 99% 이상이 외국인이고 인도나 중국의 경우도 80% 이상이 타국인들이죠.
특별한 상황이나 공통적인 이해관계가 생겼을 때는 인간적이거나 이기적인 관점에서 우호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습니다. 낯선 사람이라도 등산길에서 만나는 경우 인사를 하기도 하고 마치 지인이나 되는 것처럼 거리낌 없이 말을 걸기도 하는데 일터도 아니고 사업현장도 아니기 때문에 치열함으로 상대를 대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죠. 마음의 경계심을 플어도 되는 상황이라 생각하기 때문이죠.
상황에 따라 일시적으로 그런 모습을 보일 수는 있어도 인간을 지배하는 현실적인 최상위 강령은 경우에 따라 서로를 죽이기 위해 총대를 매야 한다는 것이죠. 그들이 신처럼 섬기는 소위 조국이 명령하면 그렇게 해야죠. 러시아에서도 우크라이나에서도 이스라엘에서도 그렇게 하고 있는 바와 같죠.
역시 인간들은 이런 관점으로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자국 혹은 조국이라는 개념은 당연하다는 의식을 가진 사람들과 그것은 불법적인 개념으로 이념적으로 그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