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배의 방식
어렸을 때 부모에 대한 의존도는 절대적이죠. 그래서 그 은혜가 하늘 같다고 하는 것이고 그 부모의 부모의 부모...... 에 대한 공경이 제사라는 숭배형태 즉 조상숭배로 연결되기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숭배욕이라는 선천적인 성향이 있는데 그런 방식으로 만족시키기도 하는 것이죠. 인간은 뭔가를 대상으로 이 숭배욕이 충족되어야 마음이 편하기에 그를 이용한 전제적 통치도 가능했던 것이죠. '천황폐하 만세'하면서 죽기도 하는 것이죠. 아니면 '대한 독립제국 만세'라고 외치던지요. 조국이라는 것도 일종의 숭배의 대상이죠. 배금주의. 황금만능주의는 돈이 그 위치에 있을 수 있음을 알려주죠.
많은 수의 사람들은 제도권 종교에서 이 욕구를 만족시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알라는 위대하다'라고 외치는 것이죠. 불상, 마리아상, 십자가예수상 등등은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매개는 그것을 더 쉽게 하게 해 주죠. 숭배라는 것도 세상에서 배운 대로 혹은 자기 임의로 하는 것이죠.
막상 합당한 유일한 숭배의 대상인 창조주에 대한 참숭배에 대해서는 대부분 알지 못하며 외면하거나 거부합니다.
창조주에 대한 숭배의 원칙, 그 방법에 대한 원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느님은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을 숭배하는 사람들은 영과 진리로 숭배해야 합니다.(요한 4:24)
영으로 숭배한다는 것은 물질적인 매개나 보조물 같은 것이 필요 없다는 것이죠. 십자가를 상징물로 사용하는 모든 기독교는 잘못 숭배하고 있는 것이죠.
이번 글은 '진리'에 초점을 맞춥니다. 물론 이 진리는 아버지의 말씀, 성서의 언명에이죠.
말씀, 명령, 계명, 율례, 규정, 법, 선언, 판결, 법규, 법칙, 생각나게 하는 것, 증거, 판단, 율법, 규례, 법도 등등 매우 다양한 어휘를 사용하여 표현하죠.
이 모든 단어에서 인간의 사적인 생각, 경험, 감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하나도 없죠.
단지 창조주에 의해 일방적으로 선언된 것에 따라 숭배해야죠. 이 점은 인간이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죠. 자연의 법칙은 사적인 것을 조금도 참작하지 않고 적용되죠. 절벽에서 뛰어내리면 충격을 받고 손을 불에 넣으면 데이죠. '혹시나'는 전혀 없죠.
물론 대부분의 인간의 숭배의 대상은 창조주인 여호와에 대해서가 아니죠. 다른 어떤 것에 대해서이죠. 자신의 생각에 따라, 자신의 감정에 따라, 자신의 경험에 영향을 받아 그렇게 하는 것이죠. 그걸 자유라고 생각할 수 있고 창조주의 일방적인 것은 일종의 속박으로 느낄 수 있죠.
그런데 그 본질은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일상에서 쾌적한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위험을 무릅쓰지 않죠. 절벽이나 화기 가까이 가서 위험을 무릅쓰려 하지 않죠. 뛰 내리지 말아야 되고 불에 손을 넣지 않음을 속박으로 생각하지 않죠. 그뿐만 아니라 살인하지 않고 강도짓 하지 않아야 된다는 점에 대해서도 부당한 구속이라든지 자유를 불편하게 제한하는 것이라고 느끼지 않죠. 오히려 그러한 제제는 자유를 누리는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느끼죠.
마찬가지로 창조주에 의해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것은 그러한 성격의 것입니다. 모세의 십계명만 하더라도 거기서 그렇게 인간의 자유를 구속하고 행복을 제한하는 것들이 있나요? 그나마 오늘날에는 그 계명마저도 구속력이 없죠.
그러나 창조주의 요구를 그런 식으로 부정적으로 느낀다면 그것은 집단 무의식 같은 것이 원인일 수 있죠. 자신도 모르는 어떤 원인에 의해 무의식에 그렇게 심어져 있는 것이죠.
인류 개개인에게 놓인 가장 심각한 쟁점은 바로 창조주에 대한 숭배가 정당하고 필요한 것이냐 하는 것이죠. 그 쟁점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영생과 영원한 멸망을 결정하죠.
인류는 이러한 쟁점에 놓여있다는 것을 아느냐 모르느냐 하는 기준으로도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