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비울 수가 있는가?
정신에는 편견, 마음에는 염려나 두려움, 사욕으로 가득 차 있고 그것들은 괴로움의 원인이기에 정신을 비우라 혹은 마음을 비우라고 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조폭의 고릿 돈으로 도박을 하다가 다 잃고 빚 시달림을 두려워하면서 전전긍긍하는 사람, 다고다고하는 자식들의 입과 손에 음식과 돈을 채워주어야 하는 의무감에 압박을 받고 있는 어머니,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아내의 대수술비를 어떻게 마련할까 노심초사는 남편, 구치소 미결방에서 형을 적게 받으려고 암중모색하고 있는 미결수들, 니코틴, 알코올, 마약, 음란물, 성 중독 등으로 하루라도 하지 않으면 심한 금단증세로 괴로워하는 사람들 등등등
정신이나 마음을 실제 비우는 일이 가능할까요? 그것이 현실문제를 해결하는데 실제로 도움이 될까요? 인간의 대뇌의 신피질의 상상력은 생각이상으로 강력하다고 합니다. 우선 몸이나 환경이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가능할 수 있겠습니다. 대소변도 마렵지 않고 배도 꼬르륵거리지 않고 특정 부위에 통증도 없고 모기가 윙윙 거리거나 물지도 않고 공사하는 소리나 차소리도 들리지 않는 혼자만 있는 고요한 환경이 필요하겠죠.
일단 묵상에 몰입하여 무념무상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하죠. 그러나 실제로는 아무 생각도 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나 모든 염려나 두려움 혹은 사적 집착에서 벗어나야지 하는 즉 해탈에 이르고자 하는 불같은(?) 욕망 같은 것이 대신 들어가는 것이 아닐까요?
아무튼 명상이 성공하여 일시적으로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고 하죠. 그런데 단지 마음을 비우는 것은 궁극의 목적도 아니고 현실의 진정한 해결책이 되는 것도 아니지요. 인간은 스스로에 대한 통치자이며 통치할 지식, 올바른 원칙이 정신가운데 있어야 그렇게 할 수 있죠. 묵상이란 단지 무념무상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이러한 것들로 그릇된 생각이나 부정적인 감정, 사욕 등을 몰아내는 노력 혹은 작용이라 할 수 있죠.
그리고 가장 성공적이었다고 해도 묵상 혹은 명상만으로 그 소기의 목적이 달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선한 것이건 악한 것이건 영계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죠. 무당들은 실제로 귀신이 도와주어야 점 보러 오는 고객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알아 그를 놀라게 만들고 신뢰를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기도를 통해 창조주의 영의 도움을 구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현실에 직면했을 때 이전과 다른 방법의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한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 진정한 반성과 사과 그리고 용서를 구하는 일이 필요하고 벌을 달게 받겠다는 태도도 필요하고 혼자 힘으로 안 되는 것은 정부기관의 도움을 받거나 하는 등의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대처를 발 빠르게 할 필요가 있는 것이죠. 어떤 것들에 대해서는 단호한 거부가 필요하죠.
그 와중에 고난이 따를 것입니다. 성서에는 자신을 부인하는 과정이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기꺼이 그렇게 하라고 격려하고 있죠. (마태 16:24)
사실 비운다는 것은 부인한다는 것 자신에 정신에 이미 뿌리 깊이 자리 잡은 편견들, 중독된 부정적 감정들, 습관들, 사욕들을 물리치는 전쟁을 해야 함을 의미하죠. 사도 바울은 처음에 이 전쟁과 직면하여 자신을 비참한 사람이라고 할 정도로 참담해했습니다.(롬 7:24) 나중에는 승리를 선언했죠.(딤후 4:7)
목탁을 두드리는 승려나 성직자들은 그런 면에서 부러운 입장에 있는 것일까요? 결론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입니다. 본질상 그들은 속이는 자들일뿐입니다. 자신도 속이죠.
정신에 창조의 법칙에 대한 정확한 지식과 확고한 인식이 들어 있지 않은 모든 사람들은 자신을 부인하는 일을 성공적으로 할 수 없습니다. 사망의 노예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