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의 사용법
인간은 의식의 사용법을 배우지 않기에 의식은 자기 본위적으로 흐릅니다. 사용법을 모르기에 각자가 임의로 생각하고 각기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면서 무의식 중에 자기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여 결국 충돌과 다툼이 생기고 심지어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죠. 상대를 죽이기까지 하는 것입니다.
성서에 대해서도 그것을 실제 창조주가 말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인간이 마치 그런 것인 양 꾸며서 쓴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대다수죠. 그 증거를 확인하지도 않고요. 저처럼 증거를 확인하는 사람이라면 절대적인 확신을 갖게 되는 그러한 것에 대해서요.
인간은 창조주에 대해서도 사유의 대상으로 할 수 있죠. 그리고 대부분 부정적으로 결론을 맺습니다.
욥은 여호와의 숭배자이고 여호와 자신도 욥의 의에 대해 자신할 정도로 그런 면에서 온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마저도 창조주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에 빠지게 되었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는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올바른 생각과 감정을 지니고 또 그와 온전히 일치하게 행동해 왔는데 극단적인 재앙을 당하게 되었으니 그런 생각을 갖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자 여호와가 그에게 직접 말을 하죠. 그중에 다음의 부분이 있죠.
사람이 감히 전능자를 흠잡고 그와 다투려고 하느냐?
하느님을 책망하고 싶어 하는 자는 대답해 보아라.”
남자답게 마음을 단단히 먹고
내가 묻는 말에 답해 보아라.
네가 내 공의에 의문을 제기하려느냐?
너 자신을 옳다고 하려고 나를 정죄하려느냐?
너는 하늘을 지배하는 법칙을 아느냐?
내 뜻을 흐리게 하고
지식 없이 말하는 이자는 누구냐?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
새벽별들이 함께 기뻐 외치고,
하느님의 아들들이 모두 갈채를 보내며 소리를 질렀을 때에 말이다.
인간은 하느님의 공의에 대해 그리고 그분이 만드신 법칙에 대한 지식이 없죠. 그분의 뜻 즉 창조의 목적에 대해서도 알지 못합니다. 창조주가 만물을 만드는 과정을 지켜본 천사들도 환호성을 질렀죠. 그분 스스로도 심히 좋았다고 할 정도로 만물은 완벽하고 아름답게 인간을 위해서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그의 하찮은 지식에 근거 헤서 그분의 뜻을 흐르게 만들고 즉 부정적인 만단을 하고 그러한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해 버리죠. 욥도 그러하였다면 현 인간들이 창조주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이해해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남자 담게 솔직하게 생각해 보십시오. 인간이 감히 그의 얄팍한 지식과 사고력으로 창조주에 대해서 판단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입니까? 너무나 그렇지 않죠.
그런데 신이 없다든지 인간사에 관심이 없다든지와 같은 부정적인 판단을 하는 것은 지극히 주제넘고 기고만장한 것이죠.
그런데 세상은 그런 생각으로 운영되죠, 나라의 통치자들이나 개개인에 이르기까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향동을 할 때 과연 그것이 하느님의 생각이나 뜻과 일치한 것인지, 그분의 승인을 받고 호의를 얻을 수 있는 것인지 전혀 고려하지 않죠.
욥은 창조주의 말씀을 다 듣고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이제 저는 주께서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으며
주께서 뜻하시면 그 무엇도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지식도 없으면서 내 뜻을 흐리게 하는 이자는 누구냐?’ 하고 주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알지 못하는 너무나 놀라운 일들에 대해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말했습니다.
주께서는 ‘부디 들어라. 내가 말하리라.
내가 질문할 터이니 답해 보아라’ 하셨습니다.
제가 주에 대해 귀로만 들었으나
이제 눈으로 주를 분명히 봅니다.
그래서 제가 한 말을 거두어들이고
먼지와 재 가운데서 회개합니다.”
지금까지는 어떠하였든지 간에 이와 같은 겸허한 태도를 나타낸다면 욥이 나중에 얻게 된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욥을 직접 만나보게 될 수 있습니다. 그의 아름답다는 딸들도 볼 수 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