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상학

영적 관리

by 법칙전달자

영적 관리


주어진 기본적인 조건들은 인간이 그 원리나 이유를 영원히 알 수 없는 것일 수 있습니다. 중력의 원리를 알 수 없는 것이죠. '불가지 법칙'이라는 것을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불가지론이라는 철학이론과는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그냥 그렇게 존재하는 것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어떤 것일 수 있습니다.


유일한 설명은 창조주가 어떤 목적을 위해 그렇게 만든 것이라는 것이죠. 창조주가 만물을 운영하기 위한 조건, 마련인 것이죠. 그 존재 목적을 행복이라고 하기는 합니다만 다 관념인 것이고 인간은 이 관념이라는 것에도 벗어날 수 없죠. 무슨 생각을 하든 무슨 상상을 하든 관념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런 조건, 그런 마련, 그런 장치에 대해 감사해야 하는 것이죠. 인간에게 영원한 신비인 것이 있는 것입니다.


이 무한한 공간의 영원한 침묵이 나를 두렵게 한다는 말이 있는데 인간이 느끼는 이러한 두려움 역시 인간이 마땅히 지녀야 할 것이죠.


전도서 3장 11~14절입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제때에 아름답게 만드셨다. 또 그들의 마음에 영원이라는 개념을 넣어 두셨다. 하지만 인간은 결코 참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찾아내지는 못한다.

나는 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고 좋은 일을 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으며, 각자가 먹고 마시며 자기가 수고하는 모든 일에서 즐거움을 얻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것이 하느님의 선물이다.

하느님께서 만드시는 모든 것이 영원하다는 것을 내가 알게 되었는데, 거기에 아무것도 더하거나 뺄 수 없다. 사람들이 그분을 두려워하도록 참하느님께서 그렇게 만드신 것이다.


요지는 모든 것을 아름답게 만들었는데 인간은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한다는 것이죠. 인간이 하느님께서 하신 궁극의 것은 알지 못한다는 것이고 인간이 그것이 대해 도무지 아무것도 하지 못하도록 했는데 이는 인간이 두려움을 갖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전자 한 알갱이를 더하거나 빼는 일도 불가능하죠. 법칙 하나를 만드는 것이나 없애는 것도요.


'외경'에는 두려움의 개념이 포함되어 있죠. 인간은 합당한 두려움을 가져야 하는 것이죠. 그런데 이 외경감은 행복의 일종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두려움은 병적인 것이 아니라 창조주를 불쾌하게 하지나 않을까 하는 합당한, 경건한 두려움이죠. 이러한 두려움은 사람 사이에 가져야 할 경우도 있죠.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관리해야 하죠. 스스로에 대한 통치자로서의 의무이기도 하고 권리이기도 하죠.


관리해야 할 부면 중에 영적인 면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글에서는 '영적 관리'의 개념에 대해 직접 설명하기보다 구체적인 예를 들고자 합니다.


인간은 보고 듣는 것만을 통해서도 소위 전율을 일으키는 행복, 끔찍스러운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보는 것은 주로 숲이나 바다 같은 자연이죠. 인간이 아름답게 느끼도록 그렇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인간의 뇌의 존재 목적이 앎이 아니라 행복이라는 것이죠. 알아내는 것은 경우에 따라 몹시 힘든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행복은 즉각적으로 강렬하게 느낄 수 있죠. 행복을 느끼는 정도는 심미안이나 발달정도나 의식 수준에 따라 차이가 있는 같은 대상에 대해 느끼는 행복의 정도에는 매우 큰 차이가 있습니다.


듣는 행복은 주로 음악을 통해서입니다. 인공적인 것이죠. 그런데 같은 음악에 대해서 소음으로 느껴 바로 외면하거나 꺼버리는 사람이 있고 반복적으로 들으면서 깊은 황홀경을 느끼는 사람이 있죠.


그런데 이러한 행복들을 느끼면서 그렇게 마련한 창조주에 대해 감사를 나타내는 것이 자신을 영적으로 관리하는 한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영적인 사람은 자연스럽게 그렇게 하게 되죠. 이러한 감사는 인간 본연의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이성을 그 용도에 맞게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죠. 인간은 이 이성을 잘못 사용하여 종교나 철학을 만들어 그것으로 스스로 멸망의 존재가 되게 하였죠. 세상을 멸망받기에 합당한 상태가 되게 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성은 영적인 면에서 뭘 알아내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지적인 면에서 뭘 알아내는 것은 오성 혹은 지성의 기능이죠.


이성은 영적 원칙들을 이해하고 적용하는 것이 그 원래의 용도입니다. 그러려면 말씀을 읽고 묵상해야죠. 그래야 관련 지식과 이해가 생기죠. 적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위에 인용한 전도서의 구절도 그 말씀이죠. 의심하고 나름의 연구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반복적으로 읽고 음미하면서 올바른 이해와 더 깊은 이해를 하려고 해야 하는 것이죠.


그리고 실제로 합당한 두려움을 갖게 되고 겸허하게 주어진 것을 감사하면서 그것으로 행복을 누린다면 그것을 적용하는 것이라 할 수 있죠. 이성을 용도에 맞게 그 존재 목적에 맞게 올바로 사용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이렇게 함으로써 자신을 영적으로 관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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