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상학

사고 사유 사색

by 법칙전달자

사고 사유 사색


모두 생각하는 것이죠. 명상이나 묵상도요. 성격이 다른 것은 다른 어휘를 사용하는 것이 자연스럽죠. 그런 시각에서 각 어휘들을 살펴봅니다. 이성과 지성(오성), 이지력에 대해서도요. 각 어휘들은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할 수 있지만 이 글에서는 용어화 해봅니다.


우선 사고는 지성(오성)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학문적인 것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죠. 자연과학을 공부하거나 수학문제를 풀 때 사용하는 정신기능이죠. 언어나 논리 같은 인문과학적 대상에 대해서도요. 하나의 정답을 찾기 위한 생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편오성에 의해 확립된 공식 같은 것을 적용해야 하죠. 아라비아숫자나 규정된 기호들을 사용해야 하죠. 구구단이나 인수분해 공식이나 물리식, 공리 및 정리들이나 법칙이나 원리들을 적용하여 생각해야 올바른 결론에 도달할 수 있죠. 주어진 단서들로 정확하게 추리해야 하죠. 사고력을 개발한다든지 사고력이 뛰어나다고 할 때는 이런 성격의 생각을 의미하는 것이죠. 당연히 실용성이 있으며 구체적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잠언 3장 21절에는 실용적인 지혜와 사고력을 잘 지키라는 권고가 있죠. 사고를 잘못하면 오류에 빠지거나 그릇된 판단을 하여 그에 따른 행동을 할 때 헛되거나 해로운 결과를 산출할 수 있죠.


사유는 이성을 사용하는 것을 의미하죠. 일상 용어로써의 이성은 지성 혹은 오성의 의미도 포함하고 있으나 용어로써 사용할 때는 명백히 다른 개념이 되죠. 일종의 철학적 생각을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논리적 생각은 오성적인 것이므로 사고라고 할 수 있죠. 확립된 개념이나 법칙에 기초하여 그렇게 하는 것이죠.


그런데 철학적 사고는 그 원천이 의심에 입각한 것이고 아무런 기초나 근거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있으면 철학이 아닌 것이죠. 기초가 있다면 무지가 그 기초이죠. 공허한 데서 출발하여 방황하기만 하는 것이고 의미 있는 결론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이죠. ...론 혹은 설이라고 하는 주장만 난무하는 것인데 현상을 만족스럽게 설명하는 것도 아니고 실용적 가치도 전혀 없는 것이죠. "썰 하지 마(풀지 마)"라고 할 때 설은 거짓말을 의미하게 되었죠.


오성계 즉 지성의 영역은 세계가 하나로 통일되어 있습니다. 구구단이나 근의 공식 F=ma 등등 세계적으로 동일합니다. 2+3이 8이라고 생각하는 지역과 9라고 생각하는 지역 혹은 6이라고 생각하는 시대가 있었고 7이라고 생각한 시대가 있었다는 식의 현상은 있을 수 없죠.


그런데 이성계 즉 철학의 영역에서는 심지어 사람마다 다른 것입니다. 그중 정치나 경제 혹은 교리와 관련된 철학은 실용화해보려고 시도하여 정계나 종교계가 있지만 분열해서 싸우고 죽이고 하느라 정신이 없죠. 역사적으로 죽 그래왔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사유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거짓뿐이며 해로우니까요.


사고의 영역 즉 지성계의 진리는 인간이 발견하는 것이고 그걸 근거로 계속 발전되어 가는 것이죠.


그러나 사유의 영역 즉 이성의 영역에서는 인간에게 그런 기능이 애초에 입력되어 있지 않아 창조주의 언명이 그 역할을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인간이 사유라는 것을 해서 유익하려면 그것을 기초로 해서 그렇게 해야 하죠. 즉 이성의 기능 혹은 용도는 그 원칙들을 이해하고 적용하는 것입니다. 신이 있는지 없는지와 같은 것들을 알아내려는 것은 그 용도가 아니라는 것이죠. 무신론이나 유신론 따위는 이성을 잘못 사용한 결론이죠. 잘못 사유한 결과라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나 사회주의 같은 것도 그러합니다. 지옥불이나 영혼불멸 같은 것도 그러하고요. 당연히 그러한 주장을 적용하려 하거나 이용하려는 결과는 해롭죠.


사색에는 특별한 용어적인 의미를 부여하지 않지만 일단 묵상과 비슷한 의미인 것으로 해둡니다.


묵상은 물리식이나 수학 공식 같은 것을 일단 외웠다면 그 본질이나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 즉 소화시키기 위해 되새기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창조주에 의해 선언된 도덕 표준 같은 것을 그런 식으로 새기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반복하여 음미하여 기억된 것을 이해하고 정신에서 익숙해지게 하여 자연스럽게 행동으로 옮겨지게 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용서해야 한다는 원칙을 배웠다면 진정한 용서란 무엇인지에 대해 듣고 본 것을 자꾸 새겨 실제로 자연스럽게 적용하기 위한 것이죠. 원수를 사랑하라거나 대접받기를 원하는 대로 대접하라든지 존경하기를 먼저 하라, 판단하지 말라 등등 많은 도덕 표준들이 있죠. 그 문구들을 다 외웠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실천하게 되는 것이 아니므로 그렇게 하게 만드는 묵상이라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묵상은 다른 여러 목적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명상이라고 할 때는 묵상으로서의 의미도 있겠지만 소위 요가나 불교 혹은 뉴에이지에서 하는 종교적 철학적 혹은 신비주의적 그런 성격이 깃들여 있을 수 있어 오해의 소지가 있어 명상이라는 표현을 조심해서 사용할 필요가 있죠. 지극정성으로 몰입하여 자신이 원하는 것을 상상하면 그것이 이루어진다는 주장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도 외견상 묵상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죠. 매우 성격이 다른 것이죠.


로마서 12장 1절에는 "여러분의 이지력으로 드리는 신성한 봉사"라는 표현이 나오는 데 원어에 대한 분석보다 이지력이라는 표현에 초점을 맞춘다면 하느님을 섬기는데 이성과 지성 즉 영적인 지식과 학문적 지식이 모두 필요하다는 의미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원어로는 '추리의 힘'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데 추리란 영적이건 학문적이건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을 적용하는 사고를 의미하죠.


또한 성서에 이성이라는 표현은 여러 번 나오죠. 이성을 잘못 사용하는 것은 차라리 이성이 없는 것보다 못한 결과를 산출하기 때문에 이성 없는 짐승과 같다고 하는 것이죠, 인간들은 그 이성을 잘못 사용하여 공식적으로 서로를 대량 학살하는, 짐승보다 못한 행동들을 하고 있죠. 자신이 정치를 해보겠다고 서로 나서 세상을 혼란스럽게, 소란스럽게 하고 있으며 진정한 평화에 대한 기대를 도무지 할 수 없게 만들어 놓았죠.


용어에 대한 정확한 개념들은 의미 있고 보람된 삶을 사는데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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