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상학

성인군자와 신선

by 법칙전달자

성인군자와 신선


'돈에 눈이 멀어, 권력에 눈이 멀어'와 같은 표현들이 있죠. 눈이 먼 사람들이나 그런 것을 추구한다는 것이죠. 대다수가 그러하죠. 또한 군자는 명리를 탐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보통 욕하고 싸우고 음식이나 술, 돈이나 성을 밝히며 사는 세상을 세속 혹은 속세라고 하고 평민들의 그런 모습들을 당연하게 여기는 시각이 있습니다. 세상에 속해 있지만 그런 것에서는 벗어난 사람들을 성인군자라고 하고 아예 속세에서 벗어나 자연인처럼 바둑이나 두면서 유유자적하게 사는 사람들은 신선이라고 하는 데 거의 신인 것처럼 묘사되죠. 무병 장수하면서 사는 그들만의 별세계가 따로 있는 것처럼 묘사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성인군자가 되는 것이 더 쉽습니다. https://brunch.co.kr/@16e7aa9606ef42a/412 죄를 짓지 않으며 그런 유혹을 느끼지도 않는 사람을 의미하죠. 그들은 세속의 사람들에게 스승으로서 존경도 받으며 조언도 하며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성인군자나 신선류인 사람들은 대부분 남성이죠. 여성은 더 그렇게 되기가 힘든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편견의 영향일 수도 있고요. 신선에 해당되는 그런 여성은 기껏해야 마녀정도죠. 무당도 여성이 더 많죠. 아직도 어떤 지역에서의 여성은 그와 같죠. 한편으로는 페미니즘이 활발한 지역도 있긴 하죠.

먹는 즐거움이 삶의 60%라는 사람도 있지만 성과 사랑(에로스)에 대해서는 어떠합니까? 식욕이나 성욕은 원래 그것을 통해 행복하도록 창조주가 부여한 기능이죠.


로미오와 쥴리엣에도 그들은 원수가문의 자녀이기에 사랑을 이룰 수 없었죠. 여기서도 조언자가 있어 그들이 사랑을 실현하는 방법을 제안하죠. 춘향전에는 이도령과 춘향이 알몸이 된 상태에서 이도령이 춘향을 성적으로 희롱하는 장면이 묘사되죠.


성적인 면은 아니지만 서유기에는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의 세속에서의 그들의 활동에 조언자 역할을 하는 신선류의 삼장법사가 등장하죠.


남녀가 진땀을 흘리며 오르가슴의 비명을 지르며 상당시간 성적 쾌락을 탐닉하는 경우 신선과 같은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그 장면을 본다 하더라도 흥분된다거나 부럽다거나 해보고 싶다는 욕망을 느끼는 일은 전혀 없죠. 단지 제삼자의 시각에서 물끄러미 관찰하며 그 남녀가 부부인 경우 영원히 그런 행복을 누릴 수 있게 축복하는 입장이 될 수 있습니다. 인간 신선류의 사람도 그럴 수 있는데 원래 천사들은 성기능이 없고 남녀구별도 없고 출산이라는 것도 없는 데 모두가 창조주에 의해 직접 창조된 존재들인데도 인간 남자로 화신하여 여자들과 관계를 가졌죠. 그들은 나중에 악귀 즉 귀신들이 되었습니다. 무당들이 신내림을 받는 경우 그들과 접하는 것이죠. 심지어 귀신들은 그들의 성기를 자극하여 오르가슴을 느끼게 한다고도 합니다.


인간에게 물질적으로 풍부하다는 것은 우선 먹을 것이 그러하다는 것을 의미하죠. 먹는 즐거움과 성적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은 본성적으로 잘못된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런데도 인간들 중에서는 그러한 것들을 탐하는데서 자유로운 신선과 같은 존재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있죠.

성서에 예수는 물론이고 예수의 제자들은 신선이상의 입장에 있게 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재창조되어 천사들보다 높은 지위에 있게 되므로 빨리 죽어서 육적으로는 자유롭게 되기를 원했지만 지상의 인간들을 위해 얼마간 인간으로 머물러 있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초연한 전지적 관찰자적인 시점에서 인간들에게 조언을 하였습니다. 사실 문학작품에서 그런 존재들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작가 자신이 그런 존재라고 간주할 수 있습니다. 그런 존재를 작품에 등장시키니까요. 그 성인군자나 신선에 해당되는 사람을 출연시키는 것이니까요.


성서에서 영적인 존재가 되어 하늘에서 이 땅을 천년 간 통치하게 되는 그런 신선류의 존재들이 있지만 육체가 그렇게 벗어나고 싶은 것이라면 육신을 가진 인간 자체의 창조가 실패라는 것을 의미하죠.


창조주는 영적 존재들을 창조한 한참 후에 인간들을 창조한 것으로 되어 있죠.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인간이 영적 인격체보다 열등한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지니지 못한 특성들이 있죠. 인간이 다른 동물들을 지배하는 만물의 영장이라도 동물들에게는 인간이 갖지 못한 기능과 뛰어난 특성들이 있는 것이죠. 당장 새들에게는 인간에게는 없는 비행의 기능이 있는 것이죠.


인간은 육체를 가진 상태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도록 되어 있죠. 그 행복가운데는 먹는 즐거움과 성적인 행복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간이 돈을 탐하고 권력을 추구하는 것은 그것 자체가 직접적으로 실용적이라서가 아니죠. 종이나 숫자나 금속조각 자체가 사는데 무슨 큰 도움이 됩니까? 그렇지 않죠.


그러나 그것이 있어야 먹을 것을 살 수 있고 성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죠. 물론 그 이상으로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죠. 그러니 혈육을 죽여서라도 왕이 되려고 했고 살인강도라는 것이 생기는 것이죠.


그런데 그런 식으로 해서 사람이 진정으로 먹는 즐거움과 성적 행복 같은 것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까? 역사와 현실은 그렇지 않음을 증명합니다. 그런 식으로 탐하는 것은 자신과 세상을 고통의 아수라장으로 빠트릴 것이기 때문에 이를 아는 사람들, 제대로 볼 수 있는 사람들이 그런 추구에서 자유로워지고 소위 성인군자가 되는 것이고 신선과 같이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성인군자가 그러한 행복을 제한받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겉보기에 탐욕스럽게 그러한 것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뿐이지 그들은 오히여 진정으로 그런 희락을 누린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행복은 기본적으로 누리는 것이고 다른 고상한 행복들을 누릴 소양이 있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죠. 성인군자라는 표현은 적합하지 않을 수 있지만 인간으로서 진정한 성인군자라면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창조의식이 없는 세상과 사람들이 진정한 가치를 누릴 수는 없습니다. 눈이 먼 사람들이 탐하는 방식으로는 결코 기본적인 행복도 진정으로 누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욕을 하며 투덜거리며 사는 것입니다. 인간의 정치나 경제제도는 물질이나 권력에ᅟ대한 탐심에서 세워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 세상은 틀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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