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희생
경우에 따라 살인은 일상사이죠. 밥을 먹거나 화장실에 가는 것 정도의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난중일기에도 이순신 장군이 오늘은 병사 2명을 참했다는 기록이 있죠. 전장에서 각군의 사령부는 전장을 지켜봅니다. 전황에 대한 보고를 받기도 하는데 전사자의 비율이 1:1이라든지 3:2라든지 하는 보고를 받는 것이죠. 선봉부대 5,000명이 전멸했다든지 하는 보고를 받아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죠. 의식이 그렇게 훈련되어 있는 것입니다.
계백장군은 전쟁에 나가기 전에 자기 가족을 먼저 죽였다고 하죠. 신라의 장군들도 화랑인 자기 아들들에게 군대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나가서 죽어줄 것을 종용했다고 하죠.
전쟁 상황에서 기회를 보아 평소에 기분 나쁘게 한 아군을 죽이는 경우도 종종 있죠. 625 때도 한국군 소령이 자기 휘하의 대위를 명령 불복종으로 죽였다는 기록이 있죠.
전장에서 자신의 위엄을 높이기 위해 다소간의 잘못으로 휘하의 장군들을 참수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합니다.
정치적인 분쟁에서 시위를 하는 가운데 죽음을 당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뜻을 강하게 표방하기 위해 분신 자살하는 경우도 더러 있죠.
평상시에 한 사람을 죽이는 살인죄도 경악스러운 범죄에 해당하죠. 심지어 사람의 목숨뿐 아니라 짐승의 생명도 마찬가지로 소중하다 하여 길을 걸을 때 개미를 밟아 죽이지 않기 위해 발걸음을 살핀다고 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겉으로는 결코 표방되지는 않지만 세계를 지배하는 주요 정신은 살인은 당연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루라도 일찍 죽어주는 것이 마지막으로 인민을 위한 길이라고 하면서 수백 명을 학살했다는 폴포트인 경우만 특수한 것이 아니라 세상의 배후지배자의 일상적인 생각이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자기 자녀들을 재물로 신에게 희생물로 바친 경우도 많았다고 하죠. 어떤 명분을 위해 혹은 대를 위해 소가 희생되는 것에 대해 일종의 사무적인 일로 간주하고 그런 것에 대해 고민하거나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것은 소인배들의 심사인 것처럼 간주했죠.
평상시에 가장 끔찍한 범죄라고 여기는 일이 공식적이고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있는 이유는 소위 실권을 가진 대인이라고 하는 존재들, 조직의 우두머리들의 의식이 살인을 일상적인 업무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정치적인 구호나 정책상으로는 결국 승리하거나 정권을 잡은 측에서 그렇게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그러한 죽음들을 숭고한 희생으로 기리면서 훈장을 수여하고 유족들에게도 보상을 하고 기념일이나 기념장소를 설정하기도 하죠.
사람은 어차피 죽는 것이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 그것이 명예를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기꺼이 조금 일찍 죽는 선택을 하는 것입니까?
이러한 정신은 광기 그 이상이 전혀 아닙니다. 인류의 99% 이상이 사실상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그런 정신의 소유자입니다. 아무리 인정하지 않으려 해도 실상이 그러합니다. 그들은 게임으로, 드라마로, 영상으로, 이야기로 그런 살인들을 즐기는 것입니다. 모든 정치세력이나 종교세력들이 유사시에 필요하다고 느끼면 기꺼이 살인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배후의 영은 자신의 영원한 멸망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인간들의 죽음에서 가학성 쾌감을 느끼는 변태적인 존재입니다. 인류를 그 영원한 멸망에 함께 하고자 하는 것이죠.
사람은 이런 점을 알고 있는지의 여부에 따라 두 부류로 나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