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교육
행정의 가벼움
(정치와 교육)
정치와 교육은 다르다. 아무리 융합적 사고가 요구되는 시대라고 할지라도 서로 지켜야 할 가치와 선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정치는 사회구성원들의 합의를 바탕으로 나라가 나아갈 방향과 구조를 결정하고 수행하는 모든 과정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 누군가를 지배하고 권력을 휘두르는 구시대적인 행위를 더 이상 정치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역사적 진통을 겪어왔기에 모두가 크게 공감할 수 있다.
교육은 진리를 탐구하고 수호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지원하는 모든 과정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한다. 단지 지식이나 기술 따위를 가르치고 인격을 수양하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은 어떤 존재이며 진리란 무엇인지를 평생 고민하고 실천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막상 정권을 잡으면 먼저 교육에 손을 대는 나쁜 버릇을 가지고 있다. 예로부터 고려시대엔 불교를 받아들여 왕실을 정당화하고 왕권을 강화하는데 이용했고 그 몰락도 함께 이루어졌다. 조선시대엔 유교를 받아들여 군자의 도리와 예를 중시하며 붕당정치로 발전했으나, 이마저 서로 세력다툼을 하느라 국운을 탕진하고 몰락의 길로 들어섰다. 현대에 이르러 박근혜 정권에서 국정교과서에 손을 대어 일부의 입맛에 맞게 뜯어고쳤다가 상식과 지각 있는 사람들의 지탄을 받기도 했다.
요즘엔 너무 대놓고 그런 일들을 벌이면 스스로도 민망해서인지, 다른 방식으로 우회하거나 은근히 드러내기도 한다. 누군가의 동상, 누군가의 건물, 누군가의 지명, 혹은 특정 지역의 상징적 건축물을 복사해서 붙여 넣기 한다든지. 너무나 다양한 방식으로 그들의 업적이나 권력을 드러내고 조장하고 세뇌시키길 원한다. 최선의 방안을 찾으려고 애쓰지도 않고 너무 쉽게 누군가에게 아첨하고 줄 서기 위한 행정을 하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임은 분명하다.
전라남도나주교육지원청 앞을 지나다가 문득 기괴한 광경을 보았다. 너른 뜰의 우측 앞에 경주에 있어야 할 첨성대가 우뚝 서 있었다. 행여 잘못 본 것이 아닐까 싶어 다시 보아도 창밖엔 첨성대가 있었다. 아무리 우리나라 대통령이 경주 이 씨이고 지난 대통령보다 눈에 띄게 성과를 거두고 있다 해도, 그 지역의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기관에서 명확한 교육관이나 애향심 없이 지역주민의 세금을 몰상식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주정미소에 들러서 2025 프린지페스티벌을 보고 그 옆 작은 미술관에서 아이들이 그린 미래를 감상했다. 내가 좋아하는 힙합 춤꾼, 오천을 비롯한 여러 댄서들의 멋진 공연을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이 그들의 젊음과 열정을 마음껏 발산하고 공유할 수 있는 장소와 기회가 마련되었다는 것은 좋았다. 그러나 비교적 협소한 무대, 공연에 몰입할 수 없게 만드는 관객석의 구조, 공연자들의 편의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설계가 거슬렸다.
방치된 나주정미소를 개조해서 문화복합공간으로 변형시킨 것은 좋지만, 교육지원청 앞에 커다란 첨성대를 세울 돈으로 정미소에 더 보태서 문화복합공간을 좀 제대로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강했다. 가방끈이 길면 뭐 하나? 가방으로써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가방은 이미 가방이라고 하기도 민망할 것이다. 굳이 그런 민망한 가방을 들고 다니는 공무원들이 아니길 바라본다.
우리나라는 더욱이 홍익인간의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어떤 개인의 이익이나 권위를 앞세우기보다는 하늘의 뜻을 구하며 되도록 선량한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이 돌아가도록 하는 행정이 요구된다. 그저 탁상공론, 조삼모사, 망우보뢰와 같은 얕고 허튼 행위가 아니라, 직접 현장을 뛰고 관계자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높은 이상을 현실에서 구현할 수 있도록 최선의 대안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작은미술관에 걸린 아이들이 그린 미래를 보면서 정치이든 교육이든, 행정이 가벼워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