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정체성

성별논쟁

by 진화정


자아정체성

(성별논쟁)


나는 내가 여자라는 것이 단 한 번도 싫었던 적이 없다. 오히려 여자로 태어나서 누릴 수 있는 많은 것들에 감사하며 살아왔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여자라면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말들이 많지만, 반드시 여자가 그래야만 한다는 법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확실히 신체적으로 여자는 남자와 구분된다. 남자와는 다른 신체적 구조를 가지고 있고, 대부분 남자에 비해 여리고 부드럽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생명을 품을 수 있는 자궁이 있다. 때문에 각자 일정한 때가 되면, 한 달에 한 번씩 마법에 걸리는 것도 다른 점이다.


하지만 사춘기가 오기 전, 또래의 다른 남자아이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던 밋밋한 나의 몸도 나는 싫어하지 않았다. 그을린 얼굴의 작고 통통한 여자아이는 남자아이들과 운동장에서 축구도 하고, 동네 아스팔트에서 비석까기도 하고, 근처 놀이터에서 자치기도 즐겨했다.


중학생이 되자, 나는 여자아이들과 교환일기에 H.O.T 사진이나 예쁜 스티커를 붙여가며 공을 들이기도 하고, 독서클럽에 참여해서 남녀를 불문하고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당시 계단에 질질 끌리던 교복치마가 어느새 적당한 길이에 맞춰질 때 즈음, 나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야 여자친구들처럼 마법에 빠지게 되었고 생각이나 감정의 변화도 커졌으니, 그때가 나의 사춘기었을 것이다. 아침마다 콩나물시루 같은 마을버스를 타고 겨우 학교에 도착해서 가파른 언덕을 겨우 오르면 지각이라 주임선생님께 불려 가서 혼이 났고, 꾸벅꾸벅 졸던 교련시간이 지나면 어느덧 야간자율학습시간이 되었다. 나는 왜 어두운 밤까지 교실에 앉아 책과 씨름하고 있는 것일까? 정말 너무 공부하기 힘들어서 오죽하면 척추가 아파올 정도였다.


그래도 위안이 되었던 것은 무료한 야자시간에 이어폰을 끼고 몰래 듣던 음악이었다. 난 고등학교도 남녀공학이었기에 다양한 취향을 가진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마이클잭슨이나 서태지를 좋아하는 친구들도 있었고, 스매싱 펌킨스나 자우림을 좋아하는 친구들도 있었고, 신해철이나 이적, 혹은 전람회나 유재하를 좋아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주머니 사정이 별로 좋지 않았던 나는 그 친구들이 학교에 가져온 CD를 빌려서 듣곤 했었다. 홀로 몰래 좋아하던 남자친구와 이어폰을 나누어 끼고 음악을 듣던 생각에 슬며시 미소가 지어진다.


그것도 너무 힘들면,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하고 등나무그늘 밑의 긴 나무의자나 학교운동장 쪽의 계단에 앉아서 조용한 어둠을 바라보며 머리를 식히곤 했다. 그러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부모님께 허락을 구하고 담임선생님께 허락을 구해서 야간자율학습을 빠졌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척추에 통증이 심해서 밤늦게까지 앉아있기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선생님은 그냥 집으로 보내주시지 않았다. 만약 내신성적이 조금이라도 떨어질 경우, 그 즉시 복귀하라는 조건이 있었다.


나는 그래도 대학에는 가보고 싶었다. 책과 글쓰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대학은 새로운 세계를 열어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집에서 나름 조금씩 공부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나의 내신성적은 그 아래로 떨어지진 않았다. 때때로 나는 비디오가게와 만화책방을 들러 재미있을 만한 것들을 집으로 빌려왔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나오는 로미오와 줄리엣이나 타이타닉, 토탈 이클립스, 그리고 꽃보다 남자 시리즈, 사이코메트러 에지 시리즈, 소년탐정 김전일 시리즈 등. 물론 마을도서관에 가서 관심 있는 고전소설이나 심리학 관련 책들을 빌려와 읽기도 했다.


잠들기 전 새벽에는 라디오 볼륨을 줄이고 음악방송을 들었다. 거기서 새로운 좋은 곡들을 많이 소개해주었고, 평소 자주 들을 수 없었던 팝송도 틀어주곤 했다. 그리고 주말에는 어김없이 부모님을 따라 등산을 가야 했다. 오르락내리락하다 보면 어느새 땀이 송골송골 맺혔고, 아버지는 나에게 그렇게 땀이 흠뻑 날 만큼 움직여야 운동이 된다고 하셨다. 그렇게 체력을 쌓으며 공부했고, 어쩌다 보니 수능을 생각보다 잘 봐서 운 좋게 정시로 서울에 있는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다.


나는 대학도 남녀가 공존하는 곳으로 갔다. 여자라서 특혜를 받거나 남자라서 불이익을 받는다는 것을 상상도 안 해봤었다. 그저 때가 되면, 남자는 군대에 가서 나라에 헌신하고 여자는 아기를 낳아 가정을 보살핀다는 생각이 막연히 당연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군인이신 아버지와 전업주부이신 어머니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나는 대학을 '나는 누구인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와 같은 질문을 던지고 진리를 추구하는 곳으로 생각해 왔다. 그것은 나의 성별과 관계없이 모두에게 유효한 것이다. 나는 여자이기 전에 사람으로서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고 있다. 비록 늦어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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