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1
한 아이
(에피소드 1)
어떤 사람들이 작은 상자 속에 조그만 한 아이를 집어넣었다. 햇살도 무엇도 들어오지 않는 캄캄한 상자 속, 아이가 숨을 쉴수록 점점 더 힘겨워졌다. 사람들은 그 상자에 적당히 구멍을 뚫었다. 아이는 덕분에 숨 쉬기 한결 나아졌지만, 사람들이 그 구멍을 뚫은 건 그 아이가 그 안에서 뭘 하며 지내는지 낱낱이 지켜보기 위해서였다. 그 구멍으로 적당히 먹을 것을 넣어주긴 했지만, 비좁은 상자 안은 아이의 똥오줌으로 늘 냄새가 진동했다.
시간이 지나자, 그 아이의 몸은 점점 커졌다. 아이가 자라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지만, 상자는 너무 비좁았고 사람들은 아이를 괴롭히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어쩌다 아이의 뽀얀 살이 구멍 밖으로 삐져나오는 날엔, 그들은 게으름뱅이가 살만 뒤룩뒤룩쪘다고 욕을 하면서 부엌칼을 가져와 그 삐져나온 살을 베어가곤 했다. 아이는 고통에 몸부림치면서 울고 불고 난리를 쳤지만, 아무도 도와주거나 위로해주지 않았다. 오히려 다음번엔 다른 누군가가 면도칼을 들고 나타나 아이의 살점을 무심히 떼어가기도 했다.
아이는 너무나 아프고 슬펐다. 그 좁은 상자 안에 갇힌 채 빛을 보지 못하고 지내는 것도 서러웠고, 사람들의 무자비한 말들과 행동들로 상처 입고 무너져가는 자신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무기력한 나날이 힘겨웠다. 그러다 점점 그 상자는 더 이상 아이를 가둘 수 없을 만큼 벌어졌다. 아이의 몸집이 계속 자라고 있었지만, 상자는 여전히 비좁았기 때문이었다.
어느 추운 겨울, 상자는 힘없이 부서졌고, 아이는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아이는 비좁고 어두운 상자 속에 알몸으로 갇혀 지냈고, 아는 것도 별로 없었다. 대신 여기저기 상처투성이었고 배가 고팠고 춥고 어지러웠다. 아이는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가만히 둘러보았다. 주위에 사람들이 빙 둘러쌌고 건장한 사내가 개에게 씌울 법한 목줄을 손에 쥐고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겨우 상자에서 빠져나온 아이에게 이제는 목줄을 걸어 씌우려는 것이었다.
아이는 글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기에 마치 동물이 내는 소리처럼 슬프게 울부짖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아무리 울부짖어도 아무도 그 울음소리에 반응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더럽고 냄새난다고 시끄럽게 울어댄다며 조용히 하라고 아이의 얼굴에 침을 뱉고 발로 찼다. 아이는 처음엔 당황해서 그냥 맞고만 있었지만, 목줄을 든 사내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극심한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이번에 붙잡히면 더 어둡고 지독한 날들 속에 던져질지도 몰랐다.
그래서 아이는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고 자신을 향해 뻗는 사내의 두 손을 뿌리쳤다. 그러자 그 사내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고 주위의 사람들도 분노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어디서 짐승 같은 게 사람을 쳐?"
사내는 다시 목줄을 힘주어 잡고 아이에게 다가섰다. 아이는 예전처럼 작은 몸집은 아니었지만, 다가오는 사내만큼 큰 몸집은 못되었다. 그래서 그 짧은 시간 동안 여기서 살아나갈 방법을 궁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사내가 아이의 목에 목줄을 채우려고 아이의 어깨를 붙잡는 순간, 아이는 상자 속의 똥무더기를 집어서 사내의 얼굴에 던지고 무작정 앞으로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너무 오랫동안 상자 속에 갇혀 지냈기 때문에 아이의 걸음은 느리고 기괴했다. 사람들은 아이를 붙잡기보다는 피하려고 뒷걸음쳤다. 아이의 몸에서 나는 악취가 인파 속에서 길을 터주었다. 아이는 알몸으로 추운 거리를 열심히 뛰었다. 정말 최선을 다해서 뛴다고 뛰었지만, 사람들이 볼 때엔 그저 기괴한 모양새로 느리게 걷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 아이는 운 좋게도 어느 성당 모퉁이 구석에 몸을 숨길 수 있었다.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그곳에 라면박스가 좀 있었고, 아이는 그 라면박스로 시린 몸을 가리고 바람을 막았다. 그렇게 아이는 오들오들 떨다가 죽을 판이었는데, 그 성당의 신부님이 그곳을 지나다가 라면박스 안에서 잠이 든 아이를 발견했다. 신부님은 지독한 냄새가 나는 아이를 들쳐 매고 급하게 따뜻한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우선 담요로 아이의 차가운 몸을 감싸고 아이가 의식을 찾을 수 있도록 팔다리를 손으로 주무르면서 말을 걸었다.
다행히 아이는 의식이 조금 돌아왔고, 기뻐하는 신부님께 말했다.
"누, 누구세요?"
신부님은 데워놓은 양송이수프를 아이에게 한 숟가락 천천히 내밀었다.
"이걸 먹어야 차가운 몸이 좀 풀릴 거야."
아이는 신부님의 말을 듣고 의심 없이 수프를 넙죽 받아먹었다. 난생처음으로 따뜻한 수프가 아이의 목을 타고 넘어갔고 그것은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아이는 갑자기 문득 눈물이 났다. 차갑게 얼어붙은 몸에서 신기하게도 뜨거운 눈물이 맺히고 또르르 흘러내렸다. 신부님은 그런 아이에게 무슨 사연이 있는지 묻지 않고 그저 말없이 손을 따뜻하게 감싸주셨다.
수프를 다 먹은 후, 신부님은 아이를 따뜻한 물이 가득 찬 욕조로 데려갔다. 신부님은 우선 부드러운 수건으로 아이의 몸을 조심스럽게 닦아주고 욕조에 들어가도 좋다고 손짓을 했다. 아이는 그렇게 맑고 포근한 물속에 들어가는 것이 처음이었다. 더 이상 몸에서 더러운 냄새가 나지 않았고, 오히려 향기로운 냄새가 은은히 풍겨왔다. 아이는 조금 전까지 있었던 무서운 일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렇게 자신을 아낌없이 돌봐주신 신부님을 떠올렸다. 아이는 그렇게 지옥과 천국을 오고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