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파

결국

by 진화정


격파

(결국)


사람들은 소위 '성공'이라는 신화에 목말라있다. 그리고 그들의 기준에 부합하는 성공을 일궈낸 스타들에 열광한다. 스타들은 자신의 성공과 더불어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그들이 기꺼이 지불하는 돈을 쓸어 담는다. 그리고 세상에 이름을 날리고 때론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기도 한다.


과연 무엇이 '성공'일까? 불현듯 일본 라멘이 먹고 싶어서 주저 없이 비행기 티켓을 끊고 일등석에 몸을 싣고 날아갈 수 있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적어도 샤넬, 디올, 에르메스 같은 명품으로 감싸고 한 손엔 커피 한 잔을 들고 한적한 도시의 거리를 활보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람보르기니, 페라리, 머스탱 같은 슈퍼카를 타고 도로를 질주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바로 그것들을 누릴 수 있는 돈과 시간과 명예를 가지는 것을 그들의 성공으로 아는 것이 아닐까. 많은 이들이 그것들을 거머쥐기 위해서 오늘도 나름의 값을 치르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것을 손에 넣은 사람 앞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절로 두 손이 모아지고 고개가 숙여진다. 그러면서 젊은이들에게 이게 바로 현실이라며 머리를 쥐어박는다.


글쎄. 그래도 예전과는 크게 달라졌다고 말들 하겠지만, 내가 보기엔 크게 다르지 않다. 갑질이 사라진 자리에, 을질이 시작되고 있기 때문이다. 방향만 다를 뿐, 갑질이나 을질이나 그게 그거 아닌가. 차라리 갑질은 나름 익숙하기라도 하지, 을질은 정말 눈꼴사나워서 못 봐주겠다.


비슷한 바닥에서 함께 뒹굴고 자라온 녀석이 갑자기 뭐라도 된 것처럼 사람을 코너로 몰고 삿대질을 해대고 심지어 걷어차는 모습은 갑질의 횡포보다 더 역겨운 수준이다. 이런 상황을 다른 말로 적절히 포장하거나 무마하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다.


한마디로 호랑이 없는 굴에 여우가 왕노릇 하는 상황이다. 다시 한 단어로 줄이면, 동물왕국.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남들이 봤을 때, 그리 친절해 보이지 않으리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들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말이 아닌 데다, 잘못된 태도를 오히려 드러내기 위함이므로 내 표현은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피라미드가 뒤집어져서 역피라미드가 된다고 한들, 그게 근본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까. 양극에 있던 사람들의 자리만 바뀌었을 뿐, 누군가는 억압하고 누군가는 지배당하는 비극적 모순은 여전히 그대로인데. 도대체 누가 누굴 욕하는 걸까.


근본적으로 무엇을 진정한 '성공'이라고 여기고 살아갈 것인지 끊임없이 묻고 생각하고 소통하지 않는다면, 이 세계는 그냥 동물왕국을 대대로 이어가는 것에 불과할 뿐일 것이다. 다른 이를 누르고 밟고 일어서야 승리라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의 미래는 더욱더 답이 없다.


더구나 다수가 소수나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강제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사회는 그 끝이 불 보듯 뻔하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우리 주변의 여러 나라들을 둘러보면 그에 맞는 적절한 예시를 찾기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삶이 어떠한지 잘 들여다보자. 과연 어떤 생각이 드는가?


블로그를 뒤적거리다 30년 전쯤에 내가 썼던 글을 발견했다. 지독한 장마로 인해 모든 것이 물에 잠겨서 어린아이처럼 울부짖는 아주머니와 장마가 지나간 자리에서 복구작업을 하고 자원봉사를 하느라 모인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데 문제는 여전히 아직도 이 문제가 계속 되풀이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집이 떠내려가고 사람이 죽어가도 매년 근본적으로 바뀌는 것 없이 무한반복의 늪에 빠져있다. 누구에게 싫은 소리 듣고 굽신거려야 하는 것만이 힘든 것이 아니다. 더 공포스러운 것은 이렇게 모두가 하나둘씩 죽어나가도 세상은 바뀌지 않고 여전하다는 것이 정말 공포가 아닐까.


모래시계를 거꾸로 돌려놓는다고 시간이 멈추어지나. 이쪽으로 떨어지든 저쪽으로 떨어지든 모래는 하염없이 밑으로 떨어져 쌓이고 시간은 계속 흘러만 가고, 결국 그 끝은 다가올 텐데. 과연 마지막 순간에 당신은 누구에게 손가락질을 할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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