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몇 십년을 써왔는데....

- 약의 힘 대신 희망의 힘으로 사시길

by 노랑무늬영원

내가 다니는 동네 병원은 어르신들이 많이 오신다. 서울시 구 중에서 어르신 비율이 높은 곳에 사는 나. (조만간 나도 그 어르신에 포함될 터인데 이런 말을 하니 좀 웃기긴 하다)

애초에 내가 이 병원에 단골이 된 사연은 몇 년 전 지인의 소개로 어머님을 모시고 왔다가 겸사겸사 나도 시간 낭비할 거 없이 같이 다니면 어떨까 싶어 그랬던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 그리고 지금은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약을 타러 이곳을 방문한다. 올 때마다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빼곡히 진료 차례를 기다리는 어르신들.

퇴근 후 피곤에 절어 두 눈을 감고 있는 동안, 여기저기 어르신의 말씀을 일부러 엿듣는 것 아니지만 저절로 들리고, 나중에는 두 귀를 쫑긋하고 본의 아니게 훔쳐 듣게 되는데 이분들 입담이 여간 재미있는 게 아니다. 두 손으로 연신 다리를 두드리시는 할머니께서 옆 친구와 이야기 꽃을 피운다. 그동안 당신의 삶이 즐거웠든 눈살을 찌푸리게 하든 어떻든 간에 최선을 다해 가족을 위해 살아온 어르신들.

가끔 내 눈길을 잡는 어떤 대화.

할머니A : (두 다리를 손으로 두드리며) 안 아픈 데가 없네.

할머니B : 마실도 다니고 운동도 하고...

할머니A : 몇십 년을 써 왔는데 고장이 안 날 리 없지.

할머니B : 그러게요. 늙으니 약 힘으로 산다니까


하긴 나도 내 몸을 50년 이상 썼는데 아직까지 20대처럼 멀쩡할 수는 없겠지. 기계도 오래 쓰려면 기름칠도 하고, 전원도 끄면서 휴식을 취하게 하고, 나사나 볼트가 마모되면 새 걸로 교체하기도 하는데 사람도 그렇게 다루는 게 맞을 거라 생각한다.


“나는 내 인생의 기름칠을 주기적으로 정기적으로 해 주었나?”

“내 삶의 나사나 볼트가 말썽일 때 새것으로 재빨리 교체해 주었나?”

“가끔은 전원을 끄고 나에게 평온한 시간을 선물했나?”

위 질문에 내 대답은 ‘아니올시다’이었다. 그렇다면 이 시대를 살아온 어르신들은 그것을 몰라서 그렇게 살아왔을까? 내 대답은 역시 ‘아니올시다’이다.


얼핏 들으니 두 분의 연세가 80살이 넘으셨다. 그렇다면 이분들은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직접 몸으로 겪으신 분이다. 해방 전 일본제국주의 마지막 발악을 어리지만 보았고, 6∙25 전쟁으로 전쟁의 참상 속에서 피난을 했을 테고, 권위주의 정권하에서는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감추고 살아야 했고, IMF체제 하에서 전대미문의 고통을 견뎌내며 살아오신 것이다.


그 어르신들이 과연 기름칠 몰라서 안 하셨을까? 아니다. 당신에게 바를 기름을 음식으로 옷으로 바꾸어 자식들이 배 안 골게 그리고 옷 따습게 입히길 위해 그 기름을 희생하신 것이다. 그분들이 젊은 시절 왜 병원에 안 가고 싶었겠나? 그 병원비 아끼려고 가더라도 미루고 미루고 또 미루고 죽지 못해 살 때야 비로소 병원에 갔을 것이다. 그리고 그분들 힘들 때 왜 안 쉬고 싶었겠는가? 한 시간 더 일하고 야근 하루 더 하고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당신이 아닌 자식들을 위해 기꺼이 그런 삶을 사신 것이다.

지금 병원에 계신 어르신들 모두 그런 삶을 살아오신 것이다. 구부정한 허리, 주름진 얼굴, 희끗희끗한 머릿결, 침침한 눈 이 모든 게 열심히 살아온 증거인 것이라 난 믿는다.


개인적 바람이면 이제 어르신들이 당신들을 위한 작은 욕심을 내면 좋겠다. 그리고 드시는 약의 숫자도 줄어서 건강하게 지내셨으면 한다. 그리고 주제 넘게도 내 또래 50대에게도 다음 사항을 부탁드리고 싶다.


하나, 삐그덕 거리기 전에 자신에게 틈틈이 기름칠을 해 주자

둘, 주기적으로 육체적, 감정적 스위치를 끄고 휴식을 취하자.

셋, 이제 자신을 위한 삶을 살자.


50대여,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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