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르신을 향해 달려가는 나?
내가 사는 동네는 서울에서 어르신 비율이 제일 높은 구로 알고 있다. 평일이나 주말에 근처를 산책만 해 보아도 20대 이하 ‘젊은층’을 만나기보다는 40대 이상 ‘중장년층’을 보기 쉬울 것이다.
며칠전 신문을 보니 3년 후에는 우리 사회가 65세 이상 인구비율이 20% 이상인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고 하고, 2040년에는 인구 3명 중 1명이 노인이 되리란 말을 한다.
그런데 이런 나이를 구분하는 것도 정의가 그리 명확하지 않다. UN에서 정한 기준으로는 나는 ‘청년’이다. 18세부터 65세까지 청년이라 정했으니 말이다. 내가 길거리에서 ‘나는 청년이다’라고 외친다면 어떨까? 사람들은 혀를 차며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할지 안 봐도 비디오다.
현재 우리나라 ‘노인장기요양법’이나 ‘기초연금법’에서는 ‘노인’을 65세 이상이라고 나와 있지만 다른 여타 법률 및 시행령에서는 정의가 모호하고 나이대도 기준이 다르다. 이는 아직 우리 사회에서 ‘노인’에 대한 고민이 걸음마에 불구하다는 반증일 게다.
지난여름 집근처에 작은 놀이터가 리모델링을 시작했다. 우리집 방향으로 오른쪽은 어르신을 위한 정자(亭子)가 있어 바둑이나 장기를 두는 분들로 가득했고, 왼쪽은 시소와 미끄럼틀이 있어 아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지난가을쯤 리모델링이 완성되어 가 봤는데 정자는 사라지고 대신 분수대가 설치되어 시원한 물줄기를 뽐내고 있었다. 왼쪽은 기존 시설 외에 추가로 긴의자가 설치된 것이다. 좁은 공간에 정자가 없어져서 넓어진 느낌이 들긴 했는데, 앉을 자리가 없어진 어르신들은 시소나 미끄럼틀 앞에 마련된 긴의자로 자리를 옮겼다.
퇴근을 할 때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는 어르신의 모습을 볼 때마다 언젠가 나도 저 빈자리에 끼어 서로의 말동무가 될 거라 생각하니 기분이 참 이상해졌다.
이제는 100세 시대라 칭한다. 과학기술과 의학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환갑만 지나도 ‘참 잘 살았다.’, ‘복 받은 인생이야.’라고 하던 그때는 진짜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이 되고야 말았다. 대신 늘어난 수명 대신 개개인의 부담은 늘어나고 동시에 할 일이 더 늘게 되었다.
첫째, 건강 지키기
둘째, 경제소득 챙기기
셋째, 할 일 만들기
넷째, 새로운 관계 만들기 등등
저녁에 도란도란 모여 이야기를 건네는 어르신은 네 번째 일을 잘 수행하는 것 같다. 땅거미가 지고 밤공기가 찰 무렵 그분들은 댁으로 가실 텐데 집에선 어떻게 지낼지, 자신을 위한 지적 혹은 육체적 활동을 하는지, 가족 관계는 원만한지, 저녁 메뉴는 무엇인지 등등 참 궁금하다.
누구나 태어나서 자라고 마지막에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지식으로서 무엇을 안다는 것과 가슴으로 무엇을 아는 것은 천양지차인 것 같다.
20대에 누군가 죽는다는 소식을 접하면 ‘많이 늙으셨으니 당연하지.’라고 생각했고, 30대 주변에서 누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으면 ‘슬슬 세상을 뜨는구나. 자주 만나 뵐걸.’이라고 생각했고, 40대가 되니 ‘태어나는 순서는 있지만 가는 순서는 없구나.’라며 좀 허탈해졌다. 지금 50대가 되니 뭔가 또 다르다. 오만가지 생각이 들다가도 결론은 하나로 흐른다.
“50이면 지천명이라는데 하늘의 뜻은커녕 내 뜻조차 모르겠구나.”
살아생전에 아버님께 ‘왜 이렇게 제 이름을 지으셨어요?’, ‘아버지, 제가 어떤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하고 물어보고 싶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 아버님은 내 곁에 안 계셨고 그 물음은 영원히 수수께끼로 남게 되었다. 아마도 아버지도 내 나이 때 비슷한 고민을 했겠지. 그리고 그 답을 찾기 위해 당신은 다름대로 노력을 하셨을 것이다.
안양천을 산책할 때 모여서 게이트볼을 치는 노인들, 주말에 등산할 때 반 팔을 입고 산을 뛰어다니는 어르신들, 카페 콘서트에서 클래식 음악을 음미하는 노부부, 지팡이 없이 허리 꼿꼿이 들고 마실을 다니는 중장년층, 공원 볕 잘 드는 의자에서 책을 보시는 신중년층, 아침 버스 탈 때 아스팔트 위에서 마라톤을 하는 시니어. 유튜브에서 여러 분야에 자신의 지혜를 나눔 기부하는 액티브 시니어. 좋은 경치를 찾아 사진을 찍는 노년층. 정말 존경스럽다. 그분들의 얼굴에서는 밝디밝은 미소가 끊이질 않는데 아마도 의무가 아닌 스스로 즐겨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한다.
나도 나의 색깔을 잘 드러내는 그런 일을 찾아서 행하고 싶다. 그리고 그 일이 다른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준다면 더욱 좋겠다. (물론 일부러 이걸 염두에 두고 하진 않을 거지만) 비록 초면이더라도, 나에게 말을 걸진 않더라도 내 모습을 보고 작은 희망의 손짓을 느꼈으면 한다. 난 얼른 그 일을 찾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