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사과를 받아줘
우리 동네에는 길냥이들이 많다. 아침 출근길에 꼬리를 살랑거리며 자동차 밑으로 기어가기도 하고, 집과 집 담장 위로 유유히 산책을 하기도 하고, 친구따라 강남가듯이 부리나케 어디론가 뒤따라가기도 하고, 사람의 흔적이라도 들리면 재빨리 꽃밭 사이로 몸을 숨긴다.
작년에 보던 키 작은 고양이 옆으로 짝궁이 생기면 나는 ‘녀석, 연애를 하는구나. 다 컷네.’ 하며 알 듯 모를 듯 미소를 짓기도 한다.
녀석들을 보고 있으면 생각나는 시, 이장희 님의 ‘봄은 고양이로소이다’이다.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의 졸음이 떠올라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가 뛰놀아라.”
고등학교 때였는데 국어 선생님이 김영랑 시인의 ‘오월’이라는 시를 수업하다가, 이 시처럼 봄의 생명력을 감각적으로 묘사한 유사한 작품으로 이장희 님의 시를 소개해서였다. 재미있는 건 학력고사에는 김영랑 시인이 단골로 출제되니 참고만 하라는 것이었다. (야박한 표현이었지만 당시 선생님의 입장은 이해 못할 바는 아니었다.)
난 고양이와 친한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귀엽고 새침하면서 까탈스럽고 변덕스러운 하지만 어느 순간 한없이 사랑스런 고양이를 어떻게 대할지 잘 몰랐던 것이다. 친해지고 싶은데 상대가 좀처럼 허락하지 않는 상태라고 해야 할까. 전국에 있는 집사의 마음은 대체 어떤 것일까 내심 부러웠다.
어릴 적 시골집에서 컸다. 개도 기르고 고양이도 있었고, 마구간에는 소도 키우던 아주 어릴 적 기억이 있다. 강아지란 녀석은 날 졸졸졸 따라다녔고 나와 놀아주기도 했으며, 내가 귀찮게 해도 거의 받아주었다. 그 시절 시골에 뭐 놀게 뭐가 있었겠는가. 주변 자연과 동물들, 그리고 가끔 얻어먹는 ‘눈깔사탕’이 전부였다.
고양이 녀석은 ‘나비야’하고 부르면 여간 해선 오지 않았고, 좀처럼 나에게 곁을 주려고 안 했으며 가끔 살갑게 나와 놀아주긴 했어도 겨우 몇 분 지나면 쌩하고 자기 볼일을 봤다. 난 그게 몹시 서운했다.
그런데 그 서운함이 쌓이고 쌓여서 그랬는지 내가 장난으로 고양이 수염을 두어 가닥 뽑은 적이 있었다. 어른들이 “그럼 냄새 못 맡고 밥도 못 먹어.” 라고 크게 꾸지람을 했다. 엉엉 울고 난 후에 미안한 마음으로 밥그릇을 녀석 코앞으로 갖다 줬건만 나비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고, 마치 안 보이는 것처럼 보였다. 어린 나로서는 그 당시 큰 충격이었고, 이것이 고양이에게 사과할 첫 번째 사건이 되었다.
그 이후 시골에서 자라 대전으로 이사오면서 국민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고양이에게 못된 짓(?)을 전과가 있었지만 고양이를 키우고 싶었다. 근데 부모님은 일을 나가셨고 내가 키우기엔 부담이라고 반대했다. 나중에 반려견이든 반려묘이든 키우는 데는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 낮잠을 자는 데 고양이 소리가 들린다. 자그마한 녀석이 앞마당에서 ‘냐옹’ 거리며 계속 나를 쳐다본다. 뭐지 하는 생각에 신기해하다가 배가 고파서인가 생각되어 부엌에서 멸치 대가리 한웅큼 가지고 와서 녀석 근처에 놓아주고 안으로 들어가니 먹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자주 녀석은 날 찾아왔고 그때마다 엄마 몰래 멸치, 생선 대가리, 우유 등을 주기 시작했다.
내가 가까이 가도 도망가지 않았고 어느 순간 녀석에게 가까이 가서 머리를 쓰다듬고 털을 만지작거려도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너무 사랑스러웠다. 그러다 난 해서는 안 될 만행을 저질렀는데, 다름 아닌 집에 있는 얇은 끈으로 목줄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며칠 있으면 우리집에 익숙해져서 어디 가지 않을 거라 확신하면서 그랬다. 삼일 후 학교가 끝나자마자 녀석을 보고 싶어 집에 오자 마당으로 달려갔는데 박스로 만든 고양이 집에 아무도 없었고 끈은 끊어져 있었다.
내가 욕심을 너무 냈다는 생각에 부끄러웠고 그 와중에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참 묘했다. 이것이 나비에게 저지른 나의 두 번째 사과할 일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녀석이 가끔 한 달에 한번 정도 날 찾아왔다는 것이다. 반가웠지만 조심스러워 멀찍이 녀석이 좋아할 만한 먹거리 주고 편안히 먹도록 자리를 피해주었다. 그러다 방문하는 기간이 길어지더니 어느새 추억으로 나에게 남은 그 고양이.
오늘도 출근길 고양이를 만난다.
‘너 지금 어디 가니? 밥은 먹었니?’ 난 눈으로 말한다.
그러면 입술을 다문 눈이 큰, 나비는 날 흘낏 쳐다보다 제 갈 길을 간다.
‘말 걸지 마. 나 바빠!’ 대충 이런 뜻 아닐까 싶다.
고양아, 이제라도 내 죄를 고백하니 너그러운 맘으로 용서해 주면 좋겠다.
너의 쭉 뻗은 수염이 어찌 봄에만 생기가 뛰놀겠는가.
사시사철 푸르게 좁은 골목에서, 담장에서, 꽃밭에서, 놀이터에서 어느 곳이든 살아 숨쉬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