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흐르는 강물처럼 화해하길
요즘 드는 생각 중의 하나는, 가족은 진짜 가까우면서도 먼 그런 관계가 아닌가 싶다. 어릴 때는 가족에 대해 큰 고민 없이 학교 집 집 학교 그렇게 지냈다면, 머리가 제법 굵어지면 서로의 주름살 사이로 이전에 보이지 않았던 집안 이런저런 문제가 보이기 시작한다.
본인이 능력만 발휘하면 해결될 문제도 있겠지만, 사실 집안일이라는 게 가족구성원 여러 명이 얽히고설켜서 모두 머리를 맞대야만 해결되는 복잡한 일이 대부분이다.
‘엄격하신 아버지와 자상하신 어머니의 단란한 가정에서 태어나 ~’
요즘 이력서에 이렇게 썼다가는 즉각 쓰레기통으로 직행할 것이었지만, 1990년대만 해도 인사담당자는 이렇게 시작되는 이력서를 쉽게 볼 수 있었다. 대학 졸업 후 내가 이와 유사한 표현으로 이력서를 썼으며, 내가 모 기업 인사담당자가 되었을 때도 이런 표현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 모두 ‘단란한’ 가정이라는 표현을, 여러 문제로 ‘지지고 볶는’ 일반 가정으로 이해했음이 분명했다. 그때는 서로 짜고 치는 고스톱마냥 그렇게 넘어갔다.
가족, 나에겐 참 설명하기 어려운 단어 같다. 그런데 나는 이 영화를 볼 때마다 ‘가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본다. 그 영화 이름은 ‘흐르는 강물처럼(A river run through it)’이다.
미국 몬태나 지역 한 감리교 목사 가정을 배경으로 부모와 형제간의 관계를 통해 우리에게 ‘가족’은 무엇인지 깊게 생각하게 하는 영화이다. 몬태나 지역의 빼어난 경치 특히 낚시하는 강도 아름답지만 각 인물 간의 대화나 표정을 통해 드러나는 심리적 묘사가 참 탁월한 것 같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브레드 피트의 연기를 보면서 얼굴만 잘생긴 기생오래비라는 선입견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다.
책을 볼 때마다 매번 느끼는 지점이 다르듯이, 이 영화도 볼 때마다 가슴에 와닿는 순간이 다른 것 같다. 주제는 커다란 테두리로 ‘가족’을 이야기하지만 내가 볼 때는 이렇게도 나눠 볼 수 있겠다. 아마 다시 본다면 다른 측면에서 이 영화를 볼 것이라 생각한다.
1. 낚시를 통한 형제간의 경쟁과 우애
2. 아버지의 교육방식과 두 아들의 대응 방식
3. 첫째와 다른 둘째 아들의 자유로운(?) 삶
4. 소심한 큰아들의 사랑 이야기
5. 노먼 가족과 제시 가족
6. 호젓한 몬태나의 풍경과 보통 사람들
그래도 명장면을 꼽자면 첫째 아들 노먼이 낚시를 하며 회상하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완벽한 이해 없이 완벽하게 사랑할 수 있다’는 말에 가슴이 울컥하면서도 돌이켜보면 내 가족에게 적용하기엔 난 너무 어설픈 아이였나 보다. 그리고 살아생전에 가족 간에 얽힌 응어리를 풀어야 하는데 그 기회를 놓친 아둔한 아들이자 동생이기도 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형제들에게는 미국 몬태나의 커다란 강물처럼 서로의 사정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할망정 완전하게 사랑을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살려야겠다.
아래는 영화 대사 스크립트다.
(형 노먼의 회상) 영화 마지막의 장면은 아버지의 임종 전 마지막 설교였다.
(아버지의 마지막 설교 중에서)
“우리는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사랑하는 이가 곤경에 처한 것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할 것입니다.
‘주여, 저 사람을 도우려고 하나 뭘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가장 가까운 이를 돕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주어야 하는지 모르기도 하고 때로는 우리가 주려던 것을 거절당하기도 합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을 그대로 받아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해야 합니다.
오롯이 이해할 수는 없어도 오롯이 사랑할 수는 있습니다”
영화 원문은 이렇다. 영어에 능숙한 분은 우리말로 번역한 것과 다른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I remember the last sermon I heard him give not long before his own death.
Each one of us here today will, at one time in our lives look upon a loved one who is in need and ask the same question.
“We are willing to help, Lord but what, if anything, is need?”
It is true we can seldom help those who closest to us. Either we don’t know what part of ourselves to give or more often than not, the part we have to give is not wanted.
And so it is those we live with and should know who elude us. but we still love them.
We can love completely without complete understan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