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가을에는 '가을방학'이지

- 나를 응원하는 음악

by 노랑무늬영원

버스에 내려 사무실 건물로 들어선다.

우산에 묻은 빗물을 최대한 털고 3층 휴게실로 발걸음을 옮긴다. 왜냐고?

아직 사무실에 가서 업무 준비할 시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제법 널찍한 자리에 앉아 창문을 바라보니 간밤에 세차게 내린던 비의 흔적은 이제는 찾아볼 수 없고 맑지만 흐릿한 날씨가 아침을 더욱 고요하게 만들었다.


마스크를 벗었더니 휴게실 안에서 꿉꿉한 냄새가 나서 창문을 열어 보았다. 시원한 가을바람이 머리로 코로 목덜미로 향하며 나를 어루만진다. 음악 듣기에 딱 좋은 날이다.


전에 말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내가 인디음악을 즐겨듣게 된 계기는 40세 언저리 쯤 출근길에서 ‘브로콜리 너마저’라는 밴드를 알고서부터다. 노래제목은 ‘앵콜요청금지’라는 곡으로 기억하는데 밴드 이름과 노래 제목이 참 특이하다고 생각하면서 직장인들로 붐빈 버스에서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는 와중에 흥미롭게

그 노래를 들었었다. 나중에야 여자 보컬 ‘계피’ 님을 알게 되었고, 2009년 밴드 ‘브로콜리 너마저’에서 탈퇴해서 그해 ‘가을방학’으로 활동하게 된 것도 알았다.


계피 님의 목소리는 다른 사람도 인정하다시피 ‘무덤덤한 쓸쓸함’이라 할 수 있겠다. 그 무심한 듯 쓸쓸하면서도 오히려 위로가 되는 그 목소리가 참으로 매력적인 가수라 말하고 싶다.

뭐 대단한 기교가 있어 듣는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는 화려한 음색은 아니지만 차분한 목소리로 사람들의 깊고 깊은 상처와 아픔을 살포시 감싸고 어루만져 준다 말없이.


지금 휴게실에는 아무도 없다. 이어폰은 필요 없다. 높은 볼륨은 더더욱 필요 없다. 10이 적당하다

저 창밖의 쓸쓸한 가을을 배경으로 여기에 계피 님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어느 계절에도 어울리는 계피 님 노래지만 ‘가을’에 유독 어울리는 까닭은 그룹 이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음악적 태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잘난 체하거나 뽐내려고 하는 음악이 아닌 특히 가을 향기 담긴 사람의 내면에서 잊고 있는 아픔이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보여주는 모습이 계피 님의 남다른 끌림이라 생각한다.


2020년 9월 6일 연합뉴스 가을방학 인터뷰에서, 계피 님은 그간 음악을 하면서 음악에 대한 태도가 변화되었다고 한다. 그 인터뷰 내용을 일부 발췌해 본다.


“이전에는 음악이 복잡다단한 세상과 내면을 표현한다고 생각해서 거기에 가치를 두었지만, 지금은 조용히 음악을 들으며 치열한 일상을 살아내는 사람들의 의연함에 더 눈이 갑니다. 최근 들어 더욱 음악산업에 돈과 자의식과 선망 등 많은 것들이 얽혀있지만 음악을 하는 본질은 주인공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응원하는 것에 있지 않을까 합니다."



지금 여기 휴게실

아무도 없는 이곳 휴게실, 오직 계피 님의 목소리만이 울리는 곳


있는 모습 그대로,

의기소침한 나를 위로하고,

나긋한 목소리로 나를 응원하고,

다그치지 않고 담담하게 내 가슴을 울리는.


출근 준비(8시 55분)까지 아직 한 발 남았다. 이거 듣고 사무실 내 자리로 GO GO


제목은 ‘가끔 미치도록 네가 안고 싶어질 때가 있어’


"넌 날 아프게 하는 사람이 아냐

수 없이 많은 나날들 속을

반짝이고 있어 항상 고마웠어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얘기겠지만

그렇지만 가끔 미치도록 네가

안고 싶어질 때가 있어

너 같은 사람은 너 밖에 없었어

마음 둘 곳이라곤 없는 이 세상 속에"


가을방학.JPG


keyword
이전 20화36화 새 중에 가장 무서운 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