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죽고 싶어 하는 그대에게

- 그대의 심장은 뭐라고 말할까

by 노랑무늬영원

며칠간 귀차니즘이 극에 달해서 집안 꼴이 말이 아니다. 미뤄 놨던 설거지도 몰아서 하고 빨래도 두 번 나눠서 돌리고 그렇게 잠시 쉬고 있는 오늘.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인디가수 ‘김사월’ 노래를 들으며, 그냥 멍 때리다가 책장 안에 놓인 ‘물 먹는 하마’가 보였다. 올봄에 새 걸로 갈아 놓은 것 같은데 습기가 많이 찼는지 갈아 줄 때가 된 것 같아 바꿔주려고 하다가 옆에 뭔가 삐죽 작은 책자가 눈에 띄었다.

먼지가 제법 낀 책자를 살포시 꺼내니 그제야 그게 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죽어 싶어하는 그대에게

그대, 정말 죽고 싶은가?

가만히 가슴에 손을 대어 보라. 쿵쿵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당신이 인생을 포기하고 싶은 이 절망의 순간에 고개를 푹 숙이고 눈물 흘리는 이 순간에도, 심장은 뜨거운 피를 펌프질하며 땀 흘리고 있다.

당신의 심장이 하루 동안 하는 일은 아는가? 그는 당신의 생명을 위해 하루 10만 번을 뛰는 중노동을 한다.

심장도 매일 힘들어 죽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심장은 불평하지 않는다. 오늘까지 단 1초, 1분도 쉬지 않았다.

그대, 죽고 싶은가? 지금 즉시 당신의 심장에 손을 얹어보라.

지그시 눈을 감고 심장이 뛰는 소리에 귀 기울여 보라.

만일 그대가 80년을 산다면 심장은 292억 번을 뛴다.

젊은 피가 끓는 당신이, 앞으로 할 일이 태산 같은 당신이, 그래도 죽고 싶은가? 아니면 살고 싶은가?

펄떡펄떡 뛰는 그대의 심장에 가만히 손대어 보자.


2007년 이맘때였던 것 같다. 갑작스러운 전화 메시지를 받고 난 전철역으로 황급히 발을 옮겼다. 옷도 대충 입고 가방은 얼떨결에 챙기고 전철 안으로 들어서니 아직 퇴근 시간은 아니라서 앉아갈 수 있었지만, 마음은 너무나 급해 한시도 참을 수 없는 지경이었다.

손을 떨리고 눈동자도 어디에 둘지 몰라 정신이 없던 그때, 순간 눈이 전철역 선반 위에 멈췄다. 이유는 모르겠다 왜 그곳에 눈길이 갔는지를. 그곳에서 지금 먼지에 쌓인 그 작은 ‘책자’를 발견했다.

흘낏 쳐다보니 제목은 ‘죽고 싶어하는 그대에게’였다.

난 ‘무슨 종교의 광고 내용인가?’ 생각하고는 현재는 읽고 싶은 상황도 아니기도 했고 전혀 집중이 안 된 때라 은연중 가방에 그 작은 책자를 우격다짐으로 밀어넣었다. 그리고 어느 지하철역에서 그녀를 만났다.


2호선 지하철을 같이 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는데 승객들이 나가고 들어오는 소리에, 안내 방송 소리에, 잡상인의 호객행위 소리에 그녀의 말소리는 들렸다 묻혔다를 반복했다. 그녀의 목소리에 집중하려 했지만 난 이미 제정신이 아닌 상태였고, 그녀의 말은 폭죽처럼 내 귀속에 팍 퍼졌다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신기루 같았다. 어떻게 대화가 마무리되었는지 지금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닌 사실 대화가 아닌 그녀의 일방적으로 내뱉는 말이었다. 난 묵묵히 듣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나마 기억나는 대화 내용은 차마 밝힐 수 없는 것이고 (내 삶이 끝날 때까지 서로를 위해 묻어둘 생각이기에),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때 내 기억이 사실인지 아닌지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누구에게나 한번은 경험했을 터이지만 한동안 참으로 죽고 싶을 만큼 시간이 날 괴롭혔다.

그러다 어느 날 가방을 정리하다가 그 작은 ‘책자’를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난 바닥까지 떨어졌던 내 자신을 추스르고 다시 살아가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또한 내 심장에게 미안해서라도 내 목을 움켜쥐었던 두 손에 차가운 냉기 대신 따스한 온기를 불어넣고 두 팔을 힘껏 휘저어 끝 모를 바닥을 박차고 어떻게든 위쪽으로 일어서야 했다.


벌써 15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때 감정을 잊을 수 없다. 지하철 선반에서 우연히 만난 이 짧은 글은 내 생명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었고, 끊어진 인연에 대해 아픔을 공감하면서도 새롭게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보여주었다. 혹시라도 이 글을 만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극단적인 결론까지 이어지진 않았겠지만, 아픈 가슴을 쥐어짜고 스스로를 계속 괴롭히면서 오랜 시간 나 자신을 심연의 바다 바닥까지 몰아넣었을 것이다.


사랑을 잃었나

시험에 불합격 했나

자꾸 취업에 미끄러졌나

자의든 타의든 회사를 나오게 되었나

코로나에도 버티고 버티던 사업이 뒤틀어졌나

통장의 잔고는 계속 줄고 건강도 내 뜻대로 안 되나


신(神)은 자신이 감당할 만큼 고난을 준다고 말하지만, 어느 때에는 스스로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상황이라 여기며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든 나날을 이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때 당신이 삶을 포기하고 싶을 때 그대의 심장은 묵묵히 뜨거운 피를 펌프질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정말 당신 죽고 싶은가? 그렇다면 잠시 당신의 심장에게 말을 걸어보자.

왜 이렇게까지 땀을 흘리고 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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