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랑무늬영원 Oct 17. 2022

46화 한글날에 그리운 얼굴

- 물에 그린 그림처럼

어느덧 10월 중순이 되었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오고 더불어 날씨도 서늘하다가 싸늘해지면 ‘가을’이라는 녀석도 어느새 ‘겨울’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이제 아침 6시에 일어나면 날이 아직 환하지 않고 좀 어둑어둑하고, 퇴근이 다가오는 5시 반 무렵에는 제법 어둠이 깔려 이 도시의 공간이 순간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가을이 되니 주말에 하는 산책이 더 어울리고 여유롭다. 하늘은 더 높아지고, 구름이 몽글몽글 모여 있으면 마음도 덩달아 들뜬 기분이 된다.     

 

지난 한글날이었다. 날이 나쁘지 않았고 대체공휴일까지 덤으로 선물을 받은 것 같아 기분이 제법 괜찮았다. 공원에 가서 음악을 들으면서 산책을 했고 작은 가방엔 책이 있어 이 가을을 만끽할 준비는 충분하였다.     

백예린 님의 ‘산책’을 들으며 천천히 공원을 돈다. 가끔 보이는 사람들도 내 관심사가 아니다. 이 평온한 느낌을 오랫동안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오롯이 붙잡고 싶다. 그런데 순간 귓가에 이런 노랫말이 나를 깨운다.     


“보고 싶어라 그리운 그 얼굴

물로 그린 그림처럼 사라지네

보고 싶어라

오늘도 그 사람을 떠올리려

산책을 하네”     



한글날. 나는 누가 그리워진걸까? 문득 잊고 있던 사람들이 떠오른다. 오래 전일이지만 난 한국어로 외국인을 가르친 적이 있었다. 대부분은 한국으로 유학을 원하거나 그냥 한국이 좋아 취미로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이많았다.  경제적 목적으로 배우든 한국문화를 향유하기 위해 배우든 똑똑하고 성실했던 학생들이었다. 그리고 아직 사회의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하고 착하기도 한 그런 학습자로 난 기억을 한다. 이런 학생들의 열정은 고스란히 나에게도 전해져서 수업에 최선을 다하게 만드는 긍정적 상호작용으로 이어졌다.   

  

1시간 한국어 수업을 진행하기 위해서 본래 수업 외에 수업중에 발생할 여러 변수에 대응할 시나리오까지 준비하면 최소 3시간 준비한 것 같다. 그리고 수업을 마치고 숙제를 검사하면서 관련 코멘트도 적고 혹시라도 학생들이 면담을 요청하면 그것까지 기꺼이 즐겁게 받아들이는 그런 날이 있었다. 진정 행복했다.     


한글날이라 그런가. 학생들이 떠오른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핑계는 대고 싶지 않다. 다만 다들 잘 지내고 있으리라 믿는다.  책상 서랍 조그만 상자에는 ‘스승의 날’, ‘내 생일’, ‘한글날’에 학생들이 정성을 다해 나에게 준 편지, 쪽지, 메모 등이 남아있다. 빛이 바래 글자가 잘 안 보여도 삐뚤빼뚤 제멋대로 쓴 글이라도 해도 내 인생의 한 순간을 즐겁게 보내게 해준 소중한 사람들이었다.    

 

내 나이 40대 초반에 만난 20대 초반 한국어 학습자들은 어찌 지내고 있을까? 나이도 30대로 접어들었을테고, 결혼을 하고 아이도 있을 수 있겠다. (연애와 결혼에 참 관심이 많던 학생로 기억한다) 지금은 직장에 다니거나 사업을 할 수도 있고 말이다. 수업시간에 발표한 각자의 꿈을 어느 정도 따라가고 있을까 참 궁금하다.     

‘산책’이란 노래를 들으면서 쳇바퀴 돌아가는 분주한 삶 속에서 학생들과의 추억이 물로 그린 그림처럼 잊고 살다가도 어떤 계기가 되면, 흐르는 물을 물감삼아 마치 처음에 그리는 그림처럼 자연스럽게 내 가슴에 기억나겠지. 그게 바로 오늘 같은 날이다.   

   

흰 티셔츠에 검정싸인펜으로 그린 너희들 그림. 내 모습 어쩜 싱크로율 100%로 그려줘서 고마웠다.

(절대로 빨래를 하면 안 된다며 신신당부하던 그 모습이 어제 같다.)   

  

꽝런, 번안, 낌응옥, 바오쩜, 리리, 안코이

모두들 잘 지내고 있길 바래. 정말 보고싶구나



작가의 이전글 44화 '노인의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