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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무늬영원 Jan 17. 2024

우울한 날 이런 시

- 그대 뒷모습을 본 적 있나요?

무척이나 우울한 날이었다 며칠 간은.

아니 아직 그 여진이 조금은 남아 있어서

더욱 조심스럽고 몸이 움츠러짐을 느낀다.


아무 것도 하지 싫다.

아니 실상 아무 것도 하지 않지만 더욱 격하게 아무 것도 하기 싫다는 말,

그 말이 실감나는 오늘 아침.


비린내 나는 버스를 타고

온갖 생선의 살을 맞닥뜨리며

한 정거장 또 한 정거장

선장은 문을 여닫으며 어장의 물을 바꾸고

종점에 이르러서야 배 갑판에서

각양각색의 물고기가 횡단보도 위로 솟구친다.

20초가 남았다는 초롯빛 신호등이

궂은 날씨의 스산함을 잠시 잊게 해준다.


사람들의 뒷모습을 본다.

얼굴보다 더 많은 표정을 알려주는 그 뒷모습

브런치 가게를 스치듯 지나치자

갓 구운 빵냄새가 굳은 내 어깨를 톡톡 두드린다.

그래, 위로라는 게 별 거 있나. 이것으로 충분하지.



뒤편                           천양희(1942~)


성당의 종소리 끝없이 울려  퍼진다

저 소리 뒤편에는

무수한 기도문이 박혀 있을 것이다 


백화점 마네킹 뒷모습이 화려하다

저 모습 뒤편에는

무수한 시침이 꽂혀 있을 것이다 


뒤편이 없다면 생의 곡선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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