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동건 Mar 16. 2024

너무 다정하지 않게

너무 다정한 건 나쁜 거래요

사탕의 맛, 기억나?

처음 봤을 땐

이게 뭐지 싶었는데

일단 껍질을 없애고 맛을 봤지

혀를 이리저리 굴려도 처음엔 별로였는데

점차 느껴지는 단맛에, 어느새 홀려버렸어

녹아 없어지면 그게 그리도 아쉬웠더랬지

맛도 기억에만 남았고     


축축하게 남은 사탕 막대를 꼭 쥐고 있다가

내 멋대로, 빨간 우편함에 쏙 넣어버렸지

빨간 상자에 넣으면 이곳저곳에

다 전달해달라고 부탁하면서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커서야 알았지 뭐야    

 

유난히 무거운 금요일이 있었지

사탕도 깜빡, 사탕도 깜빡, 

눈꺼풀도 질 수 없다 

깜빡

교문 앞에서 쏟아지는 멍하니

뛰어서 가볼까

터벅터벅 긴 길을 갈까     


뿌옇던 날 어깨에 보슬비가 내렸던 날

우산 들고 마중을 나온, 프레임에 갇힌 듯 선명하게 보였고

긴 신발로 발목을 덮은, 네가 노래를 부르던 노란 부츠였고

파아랗게 큰 우비를 입은, 같이 우산을 쓰자 했고 

사탕을 우물거리며 말하는, 볼이 동그랬지

마중을 나오면 비가 그친다는 투정 

손에 비해 큰 사탕 3개를, 손에 꼭 움켜쥔 채로

일기예보와 그리도 짓궂게 다투는, 유일한 아이였지

이번엔 진짜 맞겠지, 중얼거리며

부츠를 신고 우비를 쓰는 

잘 먹지도 않는 사탕을 입에 물고

먹지도 않는 맛까지 두루 챙겨 주머니 가득

맞아, 그런 아이였지  

   

우리 집 한켠엔 노오란 우비가 있어

병아리같이 조잘대던 부츠도 있지

함께 쓸 우산을 남겨놓는 마음과

그걸 가져오는 너의 감정도

사탕은 3개보다도 훨씬 많아

볼이 빵빵하다고 놀려도 항상 사탕을 먹고 있던 너는

부츠가 긴 이유도 알았겠지   

  

우비 옆을 지키는 사탕 꾸러미엔 

이젠 먹지도 않는 사탕이 한가득

언제 올지 모를 우편을 기다리며 두런두런

열기 띤 마음에 몸을 녹이고

입에 사탕을 물고

다른 손으로 사탕을 한껏 움켜 집고 집을 나서며 나는

나는 그렇게 살지

작가의 이전글 love wins all?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