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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건 Dec 13. 2023

가로등이 환하다. 사람이 오려나

빛에 삼켜져 살아가는 현대인과 어둠이 친숙한 나의 사이

 입김이 밀려 나온다. 숨은 세상에 나오자마자 도둑질을 당했다. 온기는 시간이 흐르면 차가운 쪽으로 흐르니. 그러나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피부로 느껴지는 감각이 눈으로 보이는 배경이 담담히 현실을 고한다. 오늘 밤의 공기는 차다. 내뱉는 숨 따위 하잘것없이 흩어지고 빼앗기는 계절이다. 겨울은 공기도 매정히 흐른다.

요즘 나는 어디에 있는가. 밝은 곳, 체온만으로 텁텁하다고 느껴질 만큼 밀집되고 탁한 공기 속. 열을 맞춰 진열된 형광등에 감시당한다. 그림자는 저 밑으로 숨고 한숨도 달아나 부정한 것은 여기에 없다.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을 하는 장소. 나는 외롭고 밝은 곳에 있다.

밝은 곳에서 밝은 곳으로 가는 길은 어둡다. 오늘을 마친 뒤 마주하는 암흑이 빛보다 따뜻하다고 하면 어떨까. 적막 깔린 길을 걷는 지금이 좋다. 이제야 사람들과 걷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생각할 수 있다. 저어하는 것은 모두 밝은 곳에 두고 왔다. 아아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만큼만 자유로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3개의 언덕과 3개의 내리막길, 7개의 편의점과 1개의 횡단보도와 도란도란 어올리는 어둠과 함께 걷는 지금이 너무나 좋다.

때로는, 때로는 너무 좋은 나머지 말이야. 너와 함께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면 내가 이상한 걸까. 밝은 태양과 화창한 날씨, 빛나는 어느 순간들을 꼽으며 인생이 아름답노라 해바라기 같은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람들을 볼 때도 나는 아니었다. 울적함을 달래고 마음을 헤집던 고민을 털어놓는 일,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잠시 나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은 날들엔 언제나 해를 피해다니곤 했으니.

그럼에도 빛에는 생명을 모으는 힘이 있다. 어두운 다리 밑에는 죽음의 냄새가 난다고들 하는데, 가로등 밑에는 왜인지 온기가 머무른다. 낮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가로등이 밤에는 참 높고 아늑하다. 높이서 내리쬐는 빛은 다 그런 걸까. 형광등은 너무 낮은 곳에서 우리를 비추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짙어진 어둠 뒤에는 꼭 가로등이 있다. 심취하지 말라는 듯 규칙적으로 길을 비춘다. 그 모습이 마치 친구 같아서. 나를 도와주고 끌어준 많은 이들을 닮아서. 또 높은 빛에 끌리는 보잘것없는 생명이 되어서. 빼앗김을 알면서도 입김을 내뱉는 아득함이 썩 마음에 들어서.

오늘 밤도. 가로등이 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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