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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우 May 22. 2018

4_“혜정아, 아기가 너무 예뻐.”

그날 아침




37. 

아내는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았습니다. 

나는 아내에게 살금살금 다가갑니다. 

지난밤 아내를 들쑤셨던 산고의 파편들이 부은 뺨에 희미하게 떠다닙니다. 


나는 조심스레 침구를 정리합니다. 

조심스레 한다고 했는데도, 아내는 인기척을 느낀 모양입니다. 

아내가 잠에서 깨어 나를 봅니다. 


“깼어?”

나는 아내의 손을 잡아줍니다. 


배고프지?”

아내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내가 나가서 먹을 것 좀 사 올게.”

나는 아내를 남겨두고 회복실을 나섭니다.   



   





38. 

거리의 아침 공기가 서늘합니다. 

출근길에 나선 사람들이 바삐 거리를 오갑니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문을 연 가게는 좀체 눈에 띄지 않습니다. 

나는 병원 주위를 헤맵니다. 


김밥을 파는 가게가 막 문을 여는 게 보입니다. 

나는 가게로 들어가 따뜻한 국물이 있는 어묵과 김밥을 주문합니다. 


김밥을 말며 아주머니가 말을 겁니다. 

“일찍 나오셨네요?” 


어제 아내가 아기를 낳았어요.”

나는 뜬금없이 동문서답을 합니다. 

아주머니가 축하의 말을 건넵니다. 


포장된 음식을 봉지에 담고 서둘러 병원으로 돌아갑니다.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칩니다. 


저 사람들에게 이 아침은 평범한 아침일 것입니다. 

매일 반복되는 아침일 것입니다. 

하지만 나와 아내에게, 

그리고 아기에게, 

오늘 아침은 다시는 오지 않을, 

단 한 번의 아침입니다. 

우리가 함께 보내는 첫 아침입니다. 


나는 잰걸음으로 걷습니다. 

마음이 자꾸만 조급해집니다.      






39.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나는 4층 버튼을 누릅니다. 


산부인과는, 

2층은 진료실, 

3층은 분만실, 

4층은 신생아실, 

5층은 회복실로 운영됩니다. 

나는 회복실로 올라가지 않고 신생아실로 갑니다. 


아기가 보고 싶습니다


보안카드를 가져다 대자 신생아실의 자동문이 열립니다. 

나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신생아실의 유리창으로 천천히 다가갑니다. 

신생아실의 유리창 너머로 투명 플라스틱 침대가 일렬로 늘어서 있습니다.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나 바라보면 

하얀 면 포대기가 깔린 침대들은 

물 내린 멥쌀가루로 막 쪄낸 백설기들 같습니다. 


얼룩 한 점 없는 백설기 위에 아기들이 고만고만한 건포도처럼 누워 있습니다. 

간호사가 나를 알아보고는, 일렬횡대의 끄트머리 침대에 놓여 있는 아기를 들어 올립니다. 


새벽에 태어난 아기는 신생아실의 막내입니다.       

나는 오물거리는 

아기의 입술을 빤히 바라봅니다. 

아기는 아직 세상의 빛살에 적응하지 못해 눈을 가늘게 뜨고 있습니다. 

나는 눈꺼풀 사이의 작은 틈으로 아기의 까만 눈동자를 들여다봅니다. 


이토록 작고 무구無垢한 인간이 있다니 놀랍습니다


나도 모르게 유리창으로 한 걸음 다가갑니다. 

아기는 아내를 닮아 피부가 아무도 밟지 않은 겨울 아침의 눈처럼 하얗습니다.      






40.

회복실로 돌아온 아내는 아기에 대해 묻습니다. 

아내는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고무젖꼭지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내게 미리 당부를 했습니다. 

그렇게 해버리면 아기가 모유를 먹지 않으려고 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나는 아기가 태어난 직후 신생아실을 들러 시키는 대로 해두었다고 아내를 안심시킵니다. 

아내는 내가 사 온 음식을 아주 조금만 먹습니다. 

나는 아내가 어묵과 김밥을 먹는 모습을 지켜봅니다.      






41. 

시간이 많이 흐른 어느 날, 아내가 말합니다. 

“기억나? 내가 오빠한테 물었어. 그날 아침에.” 


“뭘?” 

내가 되묻습니다.


“아기 봤어? 하고.”  


“.......” 


“그랬더니, 오빠가 그랬어.” 


“뭐라고 했는데.”

나는 묻습니다.


혜정아, 아기가 너무 예뻐.

나는 그 말이 참 좋았어.”


한 거라곤 아직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를 떠올리며 공연히 불안에 떠는 것 밖에 없는, 

무용하기 짝이 없는 남편의 말을 기억해주다니. 

예쁜 아기만큼, 예쁜 아내입니다. 

무엇보다 아내와 아기가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생명은 그렇게 우리에게 당도했습니다. 


감사에, 

감사를 더하여, 

감사하고 싶은 아침입니다.      






42.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상은 죄다 최초의 일입니다. 

신생아실의 간호사가 아기를 안고 회복실의 문을 노크합니다. 

아내는 처음으로 아기를 품에 안습니다. 

아내가 환자복의 앞 단추를 하나씩 풉니다. 


환자복의 앞섶으로 부푼 젖가슴이 흘러내립니다. 

젖이 젖을 흠씬 머금고 있습니다. 

젖꽃판이 채송화처럼 검붉게 피어 있습니다. 

들큼한 젖내가 회복실의 공기로 퍼져나갑니다. 


아내가 아기에게 젖을 물립니다. 

아기는 본능적으로 젖꼭지를 찾아 뭅니다. 

침이 혀뿌리에서부터 흥건히 고입니다. 

아내에게 매달린 아기가 힘차게 젖을 빨기 시작합니다. 

입술을 오물거릴 때마다 젖이 입 안 가득 흘러넘칩니다. 

가녀린 목울대가 위아래로 움직입니다. 


여자와, 

여자의 어미와, 

그 어미의 어미로부터 유구히 이어져 내려온 젖줄입니다. 


어미들은 지금껏 젖을 먹여왔고, 

지금도 젖을 먹이고 있고, 

앞으로도 젖을 먹일 것입니다. 






43.

출산 후 며칠 동안 어미의 몸에서는 초유初乳가 나옵니다. 

초유는 출산한 어미의 몸에서 나오는 첫 번째 모유입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어미의 몸 안에 형성된 면역체계가 초유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합니다. 

아내는 온갖 세균들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는 면역체계까지 아기에게 내어줍니다. 


원활한 배변활동을 돕고, 

탈수를 방지하고, 

식도와 위, 대장을 살균하는 효과까지 있다고 하니, 

정말이지 신기합니다. 


아기는 태열胎熱이 빠지지 않아 피부가 온통 발그스름합니다. 


내가 막연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못 생겼습니다

하지만 막 어미의 자궁에서 나온 아기는 

내가 지금껏 보아온 어떤 사람보다도 내 안의 무언가를 건드립니다. 

무엇으로 무엇을 건드리는지 알 수 없지만, 

말랑말랑하고 보드라운 무엇입니다. 


너무 아름다워, 괜스레 떨리는, 무엇입니다.   



   




44. 

아기가 젖을 빠는 동안 나는 주위를 기웃거립니다. 

내 손엔 카메라가 들려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그럴싸한 앵글을 잡기 위해 나는 수선을 떱니다. 

아내와 아기의 은밀한 교감에 끼고 싶어 안달이 납니다. 


아내는 아기가 유두를 너무 꽉 물어 아픈 모양입니다. 

내 소란에 예민해진 아내는 정신이 사납다며 나를 구박합니다. 

하지만 말처럼 반드시 싫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아기가 젖꼭지를 입에서 밀어내고는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합니다. 

나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습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셔터를 누릅니다. 


찰칵

찰칵


조리개가 빠르게 열렸다가 닫히는 소리가 연달아 들립니다. 

카메라는 자신의 소임을 충실히 다합니다. 

빛과 그림자로 어미와 아기를 감광판에 아로새깁니다. 


나는 단순히 어미와 아기를 사진에 담는 것이 아니라 

둘 사이에 오가는 최초의 교감까지 담아내려 애씁니다. 

왜 사진작가들이 젖을 먹이는 어미들을 찍는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그 모습에는 인간 이상의 무언가가 담겨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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