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견디게 해주는 견고한 글

이브엔슬러, 그들의 슬픔을 껴안을 수밖에

by 호수






내 정신과 의사는 언제인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연인들에게 나를 좀 안아달라 구걸하느라, 그들의 너덜거리는 팔에 풀을 붙이는 데 내 평생을 바쳤다고.

그러니 나의 글을 풀이라고 생각해 주기를







사랑으로 혁명을 일으킬 수 있을까요?
여기, 당신께 제 손을 건넵니다. p380


그녀가 건넨 손을 잡기 위해. 눈을 꼭 감고 시큰해지는 울대를 넘기며 팔을 뻗게 되는 책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여러 번 눈을 질끈 감았다.

내 앞에 콩고 파지병원의 그녀들이 앉아있지 않음에도.

책의 저자인 이브 엔슬러의 유년기는 이미 65년 전임에도.

그녀들이 인간에 의해 무자비하게 해체되는 순간에 대한 활자가 너무나도 잔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오르는 열을 삭히고, 시큰함을 삼키며 그녀들의 시간을 읽어 나갔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인간의 가장 약한 지점을 안다. 영혼이 위치한 곳을 안다.

그리고 꼭 그곳에 총구를 겨눈다. '널 파괴하는 법은 내가 잘 알지' 하는 오만함의 얼굴로.

진정 우리는 물어야 한다. 당신은 파괴를 위해 이 땅에 왔느냐고.

모든 것이 파괴되고 곁에 존재하는 인간들의 영혼까지 몰살한 이 행성에서 당신은 어떤 의미가 되느냐고.


콩고 파지병원에는 군인에 의해 자궁에 천공이 생긴 여성들이 모여 지낸다.

영혼을 파괴하는 인간 속에서 피를 흘리고 또 인간에 의해 수혈되며 그녀들은 삶을 이어나간다.

그리고 함께 모여 이후의 희망을 그린다. 이브는 여러 여성들을 이야기한다.

본인의 과거부터 어머니, 홀로코스트의 어머니와 자매, 콩고의 파지병원 여인들, 한국의 위안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여성들이 품어온 잔인한 시간이 그녀의 글에 의해 풀로 붙여진다.

그녀의 글은 자신을 안아주기 위한 너덜거리는 팔들을 붙이기 위함이라 했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시간이 흐르고 그녀의 글은 너덜너덜 해진 마음들을 단단하게 붙여주었으니.




수백 명의 여자와 아이들이 여성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가 되어 환히 빛을 내며 춤추고 있다. p162


이 구절을 읽으며 나는 상상해 본다.

보름달이 환하게 뜬 어느 날.

어린 날의 이브와 그녀의 엄마, 홀로코스트의 헬렌과 그녀의 딸들, 콩고의 여성들,

그리고 색동댕기를 곱게 묶은 소녀들이 모여 둥글게 손을 잡고 있는 풍경을.

그녀들이 함께 춤을 춘다는 상상을 하면,

손을 잡고 날아오른다는 상상을 하면.

괜시리 내 마음 한켠도 단단해지면서 기꺼이 손을 맞잡고 싶어지는 것이다.

이브는 말한다.

우리는 서로의 손길로 지속된다고, 그리고 일제히 함께 날아올라야 한다고.

그녀들을 해체시킨 잔인함에 대척되는 방향으로 말이다.

그녀가 제시하는 방향은 이타적인 사랑의 방향이다.


누군가는 너무 순진하고 감상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녀도 책에서 말하고 있다. 너무 이상적이라는 비난을 수도 없이 받았다고.

이미 미래를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는 종말론자들에게 모욕이라도 준 것 마냥,

희망 혹은 열정을 품는 일이 마치 생각이 짧은 일인 것 마냥.

하지만 나는 행동하지 않는 자들의 말보다, 이 일에 온전히 본인을 바치는 여성을 믿는다.

한 사람으로 인해 연대되는 마음이 쌓아 올릴 수 있는 방공호를 믿는다.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사랑이나 희망을 이야기하는 게 순진한가.

인간이란 보이지 않는 것에 의지하며 사는 존재들이다.

종교나 권력, 명예, 경제, 정치...

보이지 않는 것

형체 없는 것

그렇지만 당신이 믿는 것.

우린 보이지 않아도 믿을 수 있다.

나는 이런 것들 중 사랑을 믿는 편이다.




소녀들은 심장과 과거 속에 품고 있던 돌들을 꽃으로 바꾸었다. p332


완벽할 것만 같은 사랑에게도 이중성은 존재한다.

여기서부터는 개인적인 고백을 해보려 한다.

과연 사랑처럼 확고하고, 확실해서 상처가 되는 것이 있을까.

사랑이란 왜 한 인간은 배 불리면서, 다른 인간은 허기지게 하는 걸까?

나는 배부른 인간이었다.

내가 당신의 사랑을 이중적으로 생각하는 것도 모르는 할머니는 많은 손녀들 중 나에게만 애정을 주었다.

나는 나를 배부르게 한 그 사랑이 내 옆에 있던 사촌동생을 허기지게 만들었음을 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그렇게 계속 누구에게 사과하고 싶었다.

진심을 다해.

무능으로 사랑받는 일을 독차지한 어린 날들을,

어른이 되었음에도 뒤틀린 무언가를 바로잡지 못했음을,

사랑의 비겁함을 외치치 못해 작은 아이를 허기지게 한 그 무수한 날들을 사과하고 싶다.


나의 사랑은 이중적이었다. (사랑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은 모두가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고백을 남기는 이유는...

책을 읽으며 내가 사랑을 말할 수 있을지 곱씹어 보았기 때문이다.

어린 날의 동생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상처를 방관하는 인간은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생은 성인이 되었다. 다른 손녀 중 한 명은 3월에 결혼을 앞두고 있다.

우리 모두 소녀의 시간을 지나왔지만 과거 속에 품은 돌이 있다면 혹 내가 심어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나의 세대가 지나가고 가족 안에서 새로운 세대들이 등장할 것이다.

우리와 닮은 아이들이 웃고 떠드는 날들이 올 것이다.

혼란한 사랑으로 상처받는 아이들은 우리가 마지막이었으면 한다.

더 나은 날들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다시 한번 사랑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우리는 앞으로 수많은 날들을 사랑으로 살아갈 것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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