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누군가의 숨이 묻힌 땅 위를 걸었다.

임철우, 아버지의 땅

by 호수





흐르르르. 삐삐꽃이 피어나듯 주황색 불꽃이 타오르다가 이내 사그라들고 만다.

청년은 그 짧은 순간의 불빛 속에서 누군가의 얼굴을 본 것 같다.

어머니다. 어머니가 주름진 얼굴로 활짝 웃고 있었다. 다시 한 줌 집어넣는다.

이번엔 아버지와 동생들의 모습이 보였다. 또 한 줌을 조금 천천히 흩뿌려 넣는다





정말 그들이 잊어버린 것은 꿈일지도 모른다.
꿈, 소망, 희망. 먼지 낀 어린 시절의 일기장 속에서 이제는 아련한 그리움으로 섞여 있을 그런 단어.




"하지만, 꿈이란 가까운 곳에 놓아두기엔 위험한 존재입니다."

"위험하다구요? 그러나 꿈 없는 삶은 공허할 뿐입니다."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위험합니다. 꿈을 꾼다는 것은 인간에겐 언제나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어쩌면 빼앗긴에 아니라 우리 쪽에서 스스로 먼저 그것을 포기해 버리고 만 것인지도 모릅니다."





임철우의 『아버지의 땅』 그리고 이브의 『그들의 슬픔을 껴안을 수밖에』를 함께 읽었던 시간이었다.

읽기 전에는 몰랐지만, 두책 모두 다소 무거운 시간을 담아낸 터라 책을 덮고 나서도 마음이 홀가분하지 않았다. 그들의 시간이 나에게 까지 묻어있는 듯했다.

솔직하게 말하지면 두 권의 책은 모두 나를 조금 슬프게 했는데, 생각해 보니 이 책이 모두 피해자들의 시간을 담고 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의 피와 뼈가 스며들던, 또 누군가의 숨이 묻힌 이 땅 위에서 살아가면서 생각하지 못했던 시간을 아버지의 땅으로 마주하니 하염없이 슬퍼졌다.

자의든 타의든 내가 외면한 세대의 고통에 대해 알게 되었다.

숨이 헉하고 멎는 듯한 글이 있는가 하면, 그래도 안도의 숨을 살며시 내뱉게 하는 글들이 그 뒤를 따르며 이어지는 구성이었다. 특히 나는 「그 밤 호롱불을 밝히고」에서 숨이 헉하고 멎으며 눈물이 났고, 「사평역」과 「수박촌 사람들」에서 숨을 뱉어내곤 했다.

우리를 슬프게 하고 계속해서 피해자를 양산하는 역사는 끈질긴 연극처럼 계속된다. 이 책에서 처럼 새로운 얼굴들이 나타나 물려받은 의상을 갈아입고는 비슷한 일을 이어가는 형국이다.

그러니 이 소설은 쉬이 덮어버릴 수 없는 이야기. 슬프고도 무서운 우리 땅의 이야기다.


마지막으로 내 마음을 관통한 문장을 해설의 말에서 찾았다.

... 누군가의 고통을 접하고 공감함으로써, 누군가의 고통을 나아가 세계의 고통을 경감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면, 그것은 소설을 위한 유일한 답은 아닐지언정 가장 가치 있는 답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이 말이 곧, 우리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나는 다시 한번 위 문장을 이렇게 적으며 글을 마치려 한다.

... 누군가의 고통을 접하고 공감함으로써, 누군가의 고통을 나아가 세계의 고통을 경감할 수 있다면.

이것이 곧 소설의 유일한 답은 아닐지라도, 가장 가치 있는 답이 될 수 있다.


그러니 나라는 사람은 내가 읽은 모든 책이다.

당신또한 당신이 읽은 모든 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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