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말 태국에서 남북한 킹스컵축구를 관람하러 갔을 때이다. 한국축구의 기량이 지금은 월드컵 16강을 즐길 수준이지만 그때는 우리 수준은 킹스컵 같은 아시아권에 머무를 때이다. 승무원 몇 명이 함께 방콕에서 경기를 보러 갔다. 해외에서 우연히 한국 선수가 참여하는 빅 경기가 있을 때 운 좋게 그 지역에 있으면 다들 신나서 경기를 단체로 관람하는 것이다. 박찬호 나오는 야구시합을 LA에서 보기도 하고 사우디에서 국가대표 축구를 볼 때도 있었다.
축구 경기를 보던 중 화장실을 찾아가는데 도중에 이북선수 응원단 쪽을 지나쳐야 했다. 고민되었다. 그냥 모른 체 하고 지나가느냐 아니면 제법 먼 거리를 돌아가느냐를 결정해야 했다. 그때는 해외 나가기 전에 여권 소양교육이라는 사상교육을 받아야만 했다. 안기부에서 주관하던 소양 교육은 1990년 초에 사라졌다. 항공여행 자유화와 시대상황 변화에 어쩔 수 없이 중지한 것이다.
교육에서는 주로 이북 사람들과 연루되어 피해를 입은 사례를 집중적으로 보여주었다. 시청각자료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어느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데 뒤편에서 이북국기가 내려와서 이것을 사진 찍어서 회유협박을 하는 류의 교육을 하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유치하기 그지없다. 어쨌든 그 영향 때문인지 축구 경기장에서 이북사람들을 접촉하지 않으려 먼 길을 우회해서 돌아가야 했다. 지금 보면 조금 유치한 반공교육의 효과라고 할 수도 있지만 당시에는 이북사람들을 접촉한다는 것 자체가 공포심을 갖게 만들었다. 학교서부터 받아온 일종의 세뇌교육이었다.
그때부터 세월이 한참 지나서 다시 한번 킹스컵 축구경기를 관람할 때가 있었다. 이때는 아무렇 치도 않은 체 이북응원단을 가로질러 통행을 했다. 당당해졌다. 어떤 친구는 그들과 간단한 대화도 했다고 들었다. 세월의 변화를 현지에서 직접 느끼는 현장이다.
에피소드 2
한 번은 오사카에서 가라오케바를 갔다. 단일건물이 거의 20층 높이인데 그 모든 곳이 전부 가라오케 술집이었다. 무턱대고 엘리베이터를 타서 보니 한글 간판이 있어 그곳에 내렸다. 그곳의 가라오케 술집은 대부분이 그리 크지 않았고 대부분 여자 점주가 혼자서 운영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한 군데를 들어갔다. 상호가 한글로 쓰인 곳이니 분명 한국인이 하는 술집이려니 하고 들어간 곳이다.
처음 가 보니 얼떨떨한데 여사장이 “어서 오세요” 하고 우리말로 반겼다. 일본에서 술을 마시는 것은 사실 약간의 모험도 어쩔 수 없었다. 비용이 얼마나 나올지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다소 불안하기도 했다. 한 번은 후쿠오카에 술집에서 제법 바가지를 쓴 사레가 있어서였다. 나중에 보니 가라오케에 온 손님들 중 교포분들이 제법 많았다. 이 집에 온 손님은 대부분 혼자만 왔다. 단체를 좋아하는 우리 한국과는 조금 다른 양태이다. 선곡을 하고 노래 부르면 술을 한잔씩 돌아가게 되었다. 술은 일제 산토리 위스키였다. 어떤 사람은 그곳에 맡긴 술을 먹기도 했다.
하나 특이하게 눈에 띄는 것은 그곳에는 술잔의 밑받침이 없어 반드시 즉각 마시고 잔을 돌려야 하는 것이다. 어쩌다 보니 옆의 온 손님 중 한 분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현지에 거주하는 교포 분이었다. 우리는 항공승무원이라고 말했다. 그 교포분과 술도 여러 잔 하다 보니 자기가 아는 곳에서 2차를 사겠다고 함께 나가자는 것이다. 그래서 그곳을 나왔다. 다행히 큰 비용은 들지 않았다. 그분은 직원에게 자기차를 몰고 오라고 하여 함께 다른 곳에 가서 술을 한잔 더 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조금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만일 이 교포분이 조총련계라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들었다. 혹시 잘못된 곳으로 우리를 데려가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분 차를 타고 가면서 갑자기 이런 우려가 드니 더 이상 술을 마시면 안 될 성싶었다. 그래서 핑계를 대었다. 내일 아침 일찍 비행을 해서 그만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그분께서도 이해하셨다. 다음에 오면 연락하라고 명함을 주기도 하였다. 고마운 교포 분의 성의를 소양교육 때문에 순수하게 받지 못한 것이다. 해외에서 사람을 만나면 상대를 믿지 못하고 무조건 의심하는 불신사회의 한 단면이었다. 70-80 절대 반공시대의 해외에서 벌어진 웃지 못할 해프닝이었다. 지금 세대는 상상도 못 할 일이 당시에는 천연덕스럽게 벌어지는 현장이었다. 그래서 나는 21세기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