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는 선물도 되지만-

(받고 싶지 않은 선물이 될 수도)

by evan shim


장수는 싫다고 안 받을 수도 없고..



장수라는 개념은 시대에 따라 정의가 달랐다. 옛날 할아버지의 예를 들면 노인의 상태로 그냥 생존만 했다. 늙은 상태의 유지를 의미했다. 이도 다 빠져 틀니를 하고 백발에 거동도 어렵고 몸에서는 냄새가 나는, 쉽게 말하면 곧 전출을 앞둔 대기병 같은 상태라고나 할까. 나의 할아버지 이야기이다. 솔직히 마주하기 무서운 상태였다. 나도 할아버지처럼 그리 되어야 하나? 동의가 어렵다. 좀 달리 리스트럭처링 하고 싶다. 젊은 상태는 아니지만 그런대로 건강하고 아직도 일을 하고 스포츠도 즐기는 상태가 돼야 21세기 노년인 것이다. 장수를 신이 주신 선물로 받아들이고 싶다.


나의 할아버지 때는 구태여 노년을 가공할 필요가 없이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대로 조금 지나면 다 해결되는데 뭐 귀찮게 영육을 가꿀 이유가 없었다. 지금의 기대 수명보다 20-30 년 단축되었으니 자식들도 부모님께 그동안 봉사하는 것이 효도라 생각되었다. 피아 간에 그런 생각으로 적극 대처 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근데 이것은 더 이상 유지가 어려워졌다. 이제 자식들도 부모와 함께 살지 않는 세태가 되었다. 정작 필요할 때 도움은 함께 살아야 해결이 되는데 이게 난망하게 되어 버렸다. 스스로를 유지하는 것은 노년의 몫이 되어 버렸다. 그 방법 외에는 요양원에 가야 한다.


노년을 보내는 나름대로의 옵션을 만들어야 한다. 기본옵션만 가지고 우리 할아버지들이 사셨다면 이제의 노년은 다른 옵션을 선택해야 된다. 적어도 20-30년 늘어난 삶의 기간에 맞는 생활 패턴을 수립해야 이 시대에 맞는 삶을 유지하게 된다. 과거 시대는 어쩌다 장수하게 되면 기본 예상을 벗어나니 당사자도 사회도 국가도 아무런 대책을 준비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모두가 장수의 삶을 사니 새로운 생존 모델이 나와야 한다. 누군가 도전적으로 실험적인 삶을 살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


더 연장된 수명은 우리에게 더 많은 변화를 제공한다. 더 많은 선택을 강요한다. 무엇이던 꼭 대책이 필요한 시기이다. 준비 없이 맞이하기에는 그 기간이 너무 길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실험적 체험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대책을 만드는 일차적 주체는 우리 자신이다. 전혀 예상도 안 했는데 급속히 몰려온 쓰나미처럼 아직 외부적 도움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국가도 아직 고령화 사회의 제도적 대책이 피상적일 뿐이다. 100세 인생이라는 세계적인 공통현상이 21세기에 실체로 대두되었을 뿐이다. 유엔이 최근 밝힌 인구통계학적 자료를 보면 앞으로 10년이 지날수록 기대수명이 2-3년씩 증가한다는 것이다. 예측은 예측일 따름이지만 그래도 미래 세대는 적어도 110-120살까지 사는 세상이 될 것 같다. 누구에게는 오래 사는 것이 축복이 될 수 있고 다른 누구에게는 저주도 될 수 있다.


그럼 무엇부터 고민해야 하나? 가장 첫 번째 자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부터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 노년이 된 ‘나는 누구인가’에서 시작해서 ‘이 과도기를 어찌 보내야 하나’ 등의 질문을 하고 답을 궁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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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 2.0 버전이 필요하다


인생 버전을 맞게 바꾸어야겠다. 대충 3단계로 나누어 보면, 인생을 준비하는 청소년기 30년 기간, 사회에서 적극 활동하는 성년 30년, 마지막으로 닥칠 노년기는 개인에 따라 다르지만 아마도 30-40년이 된다. 짧았던 노년기가 이리 늘어나니 노년도 버전 2.0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과거 어르신들은 다가올 죽음을 맞이하는 짧은 과도기로 생각했는데 장수사회에서는 이제 달라졌다. 즉 장기전에 대비해야 세월은 선물이 되는 환경이다.


여러 가지 대처가 떠오른다. 쉽게 말하는 경제적 여건, 일거리, 건강유지, 사람들 과의 관계 등이다. 이것들은 노년기에 든 사람들에게 정말 중요하다. 이것과는 달리 나는 하나를 추가하여 추천하고 싶다.


노년기에도 젊을 때와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의 모험적인 인생자세가 필요하다. 상황인식은 어떤 자세를 견지하느냐 에 따라 행동패턴이 따른다. 예를 들어 요즘같이 추울 때 노년들은 찬 외부로 나가기가 싫다는 기본 입장을 정해 놓으면 그다음은 모두가 부정적인 기류로 흐른다. 눈길에 노년이 다니다가 낙상하면 아주 위험하다 하며 자식들도 만류하기도 한다. 이렇게 주의할 것, 위험한 것, 피할 것만 따지면 실상 할 일이 대부분 없어진다. 안전만 추구하면 한겨울 방 안에서 주는 밥만 얻으면 가장 안전하다. 그러다 가는 아무것도 못하고 세월만 축낼 뿐이다. 그러나 영원히 노년에게 우호적인 환경은 그리 자주 오지 않는다. 차가운 겨울이 지나도 센 태풍도 오고 홍수도 오며 쓰나미도 올 수 있다. 좋은 조건이 올 때까지 계속 한없이 기다릴 것인가? 오해 없기 바란다. 절대 무모함을 권하지는 않는다.


때로는 조금 위험한 활동도 감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안 해보던 일도 도전적으로 찾아보는 자세는 필요하다. 위험을 피하는 것이 최상 같지만 때로는 위험에 맞닥트리는 자세도 필요하다.


내가 자주 주장하는 이야기가 있다. 노년이 세상과 하직할 때 침대에서 편히 죽으면 이상적일까? 나는 반대로 생각한다. 젊은 사람처럼 현장에서 일하다, 모험하다, 산 위에서, 바다에서, 이름 모를 구석에서 돌아가셔도 다 의미 있는 죽음이다. 죽을 장소의 선택을 굳이 침대에서 할 필요는 없다. 침대에서 맞이하는 평온한 죽음은 보기만 좋을 뿐 아무 의미 없는 것이다. 현장에서 무언가 몸을 움직이다 세상과 하직해도 더 멋진 이별이 될 수 있다. 사람에 대한 평가는 축적된 그동안의 활동으로 그를 계량하지 죽는 장소와는 관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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