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신자표시제한.
발신자표시제한이다. 난 잠을 자기가 싫다. 자려고 눕는 순간 난 다시 추억과 기억이 올라오고 나약한 나 자신으로 돌아간다. 난 이것이 정말 싫다.
이제는 이어질 방법은 없고 이미 다 죽고 시체마냥 널브러진 껍데기인 그녀는 내 안에서 여름 누런 매미 껍데기 마냥 징그럽게 박혀있을 뿐이다.
과거 생생하고 푸릇한 정말 '살아있던' 그녀는 이미 죽고 없다.
나도 이제 그것을 마음으로 알았고 그녀에게 정을 털어버리고 등을 돌리려는 단계임에도 그녀와 내가 살던 그 정서의 잔재와 발걸음, 흔적이 나를 다시 불러드린다.
발신자표시제한. 어제는 갑작스럽게 소름 돋는 상상을 했다. 발신자표시제한으로 그녀에게 건다면 다시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라는 터무니없는 상상에서 시작된 소동이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다신 못 듣는 과거 그녀의 목소리를 상상하며 최근 죽어있던 내 감정에 다시 불을 지피듯 난 묘한 감정을 느꼈다. 작은 그리움이자 기대였다.
난 이 감정이 싫다. 이제 정말 날 떠나고 떠나서도 나에게 실제 모욕만을 주던 그녀를 그리워할 이유가 전혀 없음에도 난 왜 이리 나약한지 나 자신이 한없이 작아진다. 내 감정 앞에선 한없이 작아지는 나약한 나 자신이었다.
내가 다시 과거로 돌아갈까 두려워, 애써 이제는 비교적 정상적으로 돌아오고 이제 그녀는 나에게 없다는 걸 깨달은 지 얼마 안 됐는데 다시 그 고통받던 과거로 돌아갈까 어서어서 그 감정을 던져버리고 돌아올렴에도 그 구체적 그리움이 아닌 가루같은, 황사같은 그 그리움의 향기는 내가 어찌할 방도가 없다.
그럼에도 이성적으로 그녀는 없음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어정쩡하게 남아있는 이 향기가 정말 불쾌할 뿐이다.
조금씩, 조금씩 버텨보자.
창문 열고 이 불쾌하면서 푸릇한 이 야리꾸리한 향을 환기 시키자. 그저 시간을 두고 날 훈련시키며 나아갈 뿐이다. 기억이든 그리움이든 감정이든 지금은 난 어찌할 방도없이 혼자 되새김질할 뿐이니 결국 달라지는 건 없다.
그냥 내가 나 혼자 그 향을 음미할 뿐이다.
그녀를 잊기보단 내 성장의 한 축으로 내 마음속 빈 공간에 약간 숨이 붙어있는 그녀와의 정서를 넣고 서서히 목을 졸라 질식 시킬뿐이다. 나와 함께 가는 거다. 다만 앞으론 영향 없이, 생태적으로 돌고도는 것 마냥 죽은 껍데기 시체는 서서히 썩어 드넓은 대지에 양분이 되는 것처럼 그녀의 정서 잔재와 그녀는 조용히 임종을 맞아 방에서 내가 서서히 한동안 감정을 죽이며 질식시킬 뿐이다. 그렇게 앞으로도 그녀의 영향을 거름 삼아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나에겐 이상적인 집착이자 강박이자 내 삶의 방식이 아닐까?